Population Movements during the Qin–Han Transition and the Formation of Wiman Joseon
본고는 기원전 3~2세기 진·한 교체기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발생한 대규모 주민 이동에 주목하고, 연계(燕系) 유이민과 위만 집단의 이동·정착 과정이 위만조선 성립에 지닌 역사적 의미를 검토하였다. 이는 위만조선을 단순한 외래 세력의 침입이나 정권 교체로 이해해 온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격변기 동아시아 사회의 인구 재편과 정치 질서 변화라는 보다 넓은 맥락에서 파악하고자 한 시도이다.<br/> 문헌 기록이 전하는 바와 같이 진 말기의 농민 반란과 항우·유방의 전쟁은 중원과 화북 지역에 극심한 혼란을 초래하였고, 그 결과 연·제·조 일대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유이민이 요동과 한반도 서북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사기』·『한서』 등에서 보이는 ‘수만구’라는 표현은 이러한 이동이 단편적 사건이 아닌 구조적·집단적 현상이었음을 시사한다. 요동외요와 진고공지는 당시 진·한과 고조선의 직접 지배가 미치지 않는 경계 공간으로, 유이민 집단이 정착하고 세력을 형성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br/> 위만은 이러한 공간적·시대적 조건 속에서 연계 유이민을 규합하여 정치적·군사적 기반을 구축하였으며, 토착 세력 일부를 포섭함으로써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그 결과 준왕 체제가 붕괴되고 위만조선이 성립하였는데, 이는 단순한 외래 지배 권력의 성립이라기보다 이주민 집단과 고조선 사회 토착민 간의 권력 재편과 융합의 산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br/> 고고학 자료 역시 이러한 해석을 보완한다. 요동과 한반도 서북 지역에서 확인되는 전국·진한계 철기 문화와 명도전의 분포는 단순한 물자 교류를 넘어 주민 이동과 정착이 동반되었음을 시사한다. 특히 철제 농공구와 무기류의 확산은 위만조선이 정치적·군사적 역량을 강화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으로 평가할 수 있다.
Authors
- Ho-jung Song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Journal of Korean Ancient History
- Published
- 2026-03-31
- DOI
- https://doi.org/10.37331/jkah.2026.3.121.5
- Primary Topic
-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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