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ssue of Kaika-eiso during the 1711 Joseon Tongsinsa Mission -An Analysis of the Process through the So-ke Documents-
본고는 신묘사행 당시 아라이 하쿠세키에 의해 일방적으로 단행된 빙례개혁 가운데 하나인 계하영송문제를 쓰시마번의 종가문서를 통해 다루어 본 것이다.<br/> 계하영송문제란 전례와 달리, 쇼군이 보낸 사신을 통신사 삼사가 계단 아래로 내려와 맞이하도록 예법을 변경한 문제를 가리킨다. 이는 임술사행 때에도 변경을 시도한 전력이 있을 정도로 당대 예법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br/> 쓰시마번은 로쥬와 하쿠세키 사이의 지시 아래 통신사가 후츄에 도착했을 때부터 삼사들을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쓰시마번은 2개월에 걸쳐 삼사들을 설득하였으나 협상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br/> 그러나 첫 번째로 상사가 파견되는 오사카에 가까워지면서 쓰시마번은 태도를 바꾸어 절차적인 문제와, 막부와 하쿠세키의 예법 변경안의 모순을 지적하며 상사를 중지시킬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이는 끝내 하쿠세키의 반대와 로쥬들의 봉서로 인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br/> 쓰시마번은 다시 협상에 몰입하게 되고, 결국 삼사는 오사카에서 이를 수용하게 된다. 국왕이 특별히 선례를 잘 지키라는 주문을 내렸음에도 이를 끝내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이유는, 우선 쓰시마번 측이 내민 근거가 조선과 중국의 서적이었음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고, 또한 앞으로 또 있을지 모를 예법의 변경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픈 마음이 컸을 것이며, 마지막으로 신묘약조 체결이라는 큰 이벤트를 앞두고 있었기에 번주와의 관계성을 구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br/> 다만 본 계하영송은 예법을 되돌리기로 결정한 차기 쇼군의 결정에 따라 임술사행 때의 방식으로 원복된다. 만약 도해하기 전에 국왕복호나 와카기미에 대한 선물 중지 등과 같은 일방적인 요청에 따른 협의가 없었다면, 즉 다른 차수의 일반적인 사행과 같은 상황 아래 계하영송과 같은 제안이 행해졌다면 의외로 비교적 순탄히 타결되었을지도 모른다.
Authors
- Jae-Hoon Lee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Korea-Japan Historical Review
- Published
- 2026-02-28
- DOI
- https://doi.org/10.18496/kjhr.2026.2.91.115
- Primary Topic
- Religious Studies and Spiritual Practic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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