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ation and Transformation Mechanisms of the Chinese ‘Ai Ma Bieli’ Iconography

출가를 결심한 싯다르타 태자가 카필라성을 떠나 고행림에 이르러 애마 칸타카, 마부 찬타카와 헤어지는 순간이 ‘애마별리(愛⾺別離)’이다. 이 사건을 모티프로 하여 만들어진 애마별리상은 인도 간다라에서 처음 만들어져 중국으로 전해졌고, 북위-동위-북제 시기에 걸쳐 유행하였다. 이 글은 종교 미술이 종교 경전의 규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또 미술의 변화가 독자성을 가진다는 전제하에 중국 애마별리 도상의 형성과 변화 과정을 고찰한 것이다.<br/> 중국 특유의 애마별리 도상 형상과 변화의 단서는 인도와 달리 중국의 싯다르타 태자가 “반가의 자세로 앉아 사유” 한다는 점에 있었다. 싯다르타가 ‘별리’의 순간에 앉아서 사유하자 서 있는 싯다르타를 중심으로 배치되었던 애마 칸타카, 시종 찬타카 구도에 부조화가 생겼다. 말은 먼 길을 떠나려는 싯다르타의 서 있는 발을 핥을 수 없었고, 시종은 세속의 옷을 벗어 건네는 싯다르타로부터 받아 들 물건이 없어진 것이다. 이같은 부조화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국 특유의 애마별리상이 만들어졌다.<br/> 새로운 애마별리상이 만들어지자 중국인들은 이를 변화시키기 시작하였다. 가장 쉬운 방법은 반가사유한 싯다르타에게 곡수(曲樹)를 드리우는 것이었다. 곡수는 싯다르타가 나무 아래에서 첫 선정에 들었다는 수하사유(樹下思惟) 이야기의 핵심 요소였다. 애마별리 장면에서도 싯다르타가 반가사유하게 되자 내적 연상에 의해 덧붙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중국인들은 싯다르타가 성불하는 의미 있는 순간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그들은 싯다르타 옆에 공양자상을 삽입하고 여기에 망부나 망모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이것은 내적 연상과는 또 다른 외적 원망의 각인 방식이었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곡수나 공양자상이 동반 출현하거나, 수하사유 장면과 애마별리 장면이 싯다르타를 매개로 결합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br/> 모든 일은 애마별리 순간에 싯다르타가 반가사유하면서 시작되었다. 중국인들은 왜 이별의 순간에 싯다르타를 “앉아서 사유”하게 만들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확실한 점은 고대 중국인들이 애마별리 순간의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을 ‘반가사유’ 자세로 고정시켰고, 여기에 곡수와 공양자상 등 새로운 요소들을 덧붙여 중국 특유의 애마별리상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 고유의 애마별리상이 형성되고 변주하는 과정이었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Art History
Published
2026-02-28
DOI
https://doi.org/10.14769/jkaahe.2026.02.51.57
Primary Topic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Typ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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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rmation and Transformation Mechanisms of the Chinese ‘Ai Ma Bieli’ Iconography

Eun-Young Shin
Art History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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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rmation and Transformation Mechanisms of the Chinese ‘Ai Ma Bieli’ Iconography

Eun-Young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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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출가를 결심한 싯다르타 태자가 카필라성을 떠나 고행림에 이르러 애마 칸타카, 마부 찬타카와 헤어지는 순간이 ‘애마별리(愛⾺別離)’이다. 이 사건을 모티프로 하여 만들어진 애마별리상은 인도 간다라에서 처음 만들어져 중국으로 전해졌고, 북위-동위-북제 시기에 걸쳐 유행하였다. 이 글은 종교 미술이 종교 경전의 규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또 미술의 변화가 독자성을 가진다는 전제하에 중국 애마별리 도상의 형성과 변화 과정을 고찰한 것이다.<br/> 중국 특유의 애마별리 도상 형상과 변화의 단서는 인도와 달리 중국의 싯다르타 태자가 “반가의 자세로 앉아 사유” 한다는 점에 있었다. 싯다르타가 ‘별리’의 순간에 앉아서 사유하자 서 있는 싯다르타를 중심으로 배치되었던 애마 칸타카, 시종 찬타카 구도에 부조화가 생겼다. 말은 먼 길을 떠나려는 싯다르타의 서 있는 발을 핥을 수 없었고, 시종은 세속의 옷을 벗어 건네는 싯다르타로부터 받아 들 물건이 없어진 것이다. 이같은 부조화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국 특유의 애마별리상이 만들어졌다.<br/> 새로운 애마별리상이 만들어지자 중국인들은 이를 변화시키기 시작하였다. 가장 쉬운 방법은 반가사유한 싯다르타에게 곡수(曲樹)를 드리우는 것이었다. 곡수는 싯다르타가 나무 아래에서 첫 선정에 들었다는 수하사유(樹下思惟) 이야기의 핵심 요소였다. 애마별리 장면에서도 싯다르타가 반가사유하게 되자 내적 연상에 의해 덧붙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중국인들은 싯다르타가 성불하는 의미 있는 순간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그들은 싯다르타 옆에 공양자상을 삽입하고 여기에 망부나 망모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이것은 내적 연상과는 또 다른 외적 원망의 각인 방식이었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곡수나 공양자상이 동반 출현하거나, 수하사유 장면과 애마별리 장면이 싯다르타를 매개로 결합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br/> 모든 일은 애마별리 순간에 싯다르타가 반가사유하면서 시작되었다. 중국인들은 왜 이별의 순간에 싯다르타를 “앉아서 사유”하게 만들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확실한 점은 고대 중국인들이 애마별리 순간의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을 ‘반가사유’ 자세로 고정시켰고, 여기에 곡수와 공양자상 등 새로운 요소들을 덧붙여 중국 특유의 애마별리상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 고유의 애마별리상이 형성되고 변주하는 과정이었다.

Art HistoryVol.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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