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the Yusang-goksu Site of Haeinsa Temple in Gayasan Mountain : Based on the Comparison with Gyeongju Poseokjeong
이 연구는 가야산 해인사 유상곡수(流觸曲水) 유적과 경주 포석정지의 비교를 통해 해인사 곡수거((曲水渠)가 지닌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규명한 것이다.<br/> 해인사 곡수거는 신라 말에 고운 최치원이 조성하여 놀던 곳이다. 이 유적의 역사성은 1460년 강희맹과 1463년 김시습이 해인사에서 쓴 시들에서 확인된다. 이 기록은 당시 유적을 발굴한 해인사 주지의 진술에 근거하였다. 최치원은 898년 해인사에 입산하여 909년까지 약 11년 동안 머물렀는데, 이 시기 해인사 역사와 고승들의 전기를 찬술하는 등 많은 저술 활동을 하였다. 해인사에서 최치원의 위상은 그가 유상곡수를 즐길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br/> 유상곡수 문화는 중국 왕희지의 난정수계(蘭亭修禊)를 본받아 시작되었다. 유상곡수는 단순히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모임을 넘어, 액운을 막는 계사(禊事)의 의미까지 담고 있는 복합적인 문화이다. 유상곡수는 동양의 보편문화로 확대되었고, 우리나라 유상곡수도 그 흐름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유상곡수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만, 곡수거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곳은 경주의 포석정지와 해인사의 곡수거이다. 유상곡수를 위한 정원은 계곡, 정자, 석단, 그리고 곡수거로 이루어져 있는데, 포석정지는 석계천과 석단, 포석, 포석정으로, 해인사 유상곡수 유적은 영지, 홍하루, 봉명석, 곡수거로 구성되어 있다. 포석정지의 곡수로는 전체 길이가 10.3m이며, 63개의 돌을 섬세하게 깔고 양옆으로 돌담을 둘러 물길을 만들었다. 주수구와 배수구가 따로 설치되고, 돌의 크기와 모양을 다르게 해서 물이 구불구불 흐르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해인사 곡수거는 아래에 큰 돌을 받치고 그 위에 6개의 큰 돌을 얹은 형태인데, 가장 큰 돌은 안쪽 198cm, 바깥 231cm, 폭 71cm, 높이 118cm나 된다. 수로의 폭은 20cm. 높이는 32cm 내외로 부분마다 조금씩 다른데, 이는 곡수거가 아래 구조물 위에서 수평을 이루도록 돌을 정교하게 깎았기 때문이다. 포석정지와 해인사 유상곡수의 공통점은 곡수거 옆으로 시내가 흘러서 곡수거로 물을 끌어들이기 편리하다는 점, 곡수거 옆에 포석정이나 홍하루와 같은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점, 곡수거 바로 옆에 평평한 석단이 놓여있다는 점이다. 이런 특징들은 유상곡수를 위한 정원조경의 유사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br/> 해인사 유상곡수 유적은 포석정지와 더불어 우리나라 유상곡수의 온전한 형식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사례이다. 해인사 곡수거가 규모나 조형미에서 포석정보다 소박하지만, 돌을 다루는 방식의 독창성과 해인사 유상곡수 유적과 관련된 풍부한 문학 유산, 그리고 유상곡수 정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다.
Authors
- Seong Mi Noh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ASIAN COMPARATIVE FOLKLORE
- Published
- 2025-10-31
- DOI
- https://doi.org/10.38078/acf.2025.10.82.123
- Primary Topic
- Archaeology and ancient environment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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