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han and Mokji in the 2nd and 3rd centuries
문헌사료와 고고학적 연구 성과를 고려하면 마한은 수백 년간 동일한 성격으로 지속된 정치체가 아니었다. 마한은 『삼국지』·『후한서』 이전 시기(조기 마한), 『삼국지』·『후한서』 단계의 시기(전기 마한), 『진서』 단계의 시기(중기 마한), 그리고 이후의 시기(후기 마한)에 따라 공간 범위와 정치적 성숙도를 달리한다.<br/> 이 중에 『삼국지』·『후한서』 단계의 전기 마한은 시기적으로 2~3세기 사이로 파악된다. 『삼국지』·『한원』에는 마한 50여 국이 기록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마한의 범위인 경기-충청-전남북을 모두 차지하지는 못한다. 이외에도 한나해, 신미국 등 다수의 새로운 마한 소국과 관련된 존재가 확인되기 때문이다.<br/> 그런데 『삼국지』는 마한 50여 국의 중심체를 목지국이라 하였다. 따라서 목지국의 위상에 대해 대부분의 연구자는 삼한 전체의 왕이자 마한의 대국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마한 사회는 중심국인 목지국과 다수 소국이 통합적인 구조와 체계를 갖는다고 파악되었고, 최근의 고고학적인 성과를 반영하여 충남 천안·아산 일대가 목지국의 위치로 주목되고 있다.<br/> 『삼국사기』에도 마한이란 존재가 등장한다. 국읍과 더불어 성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하나의 소국으로 파악된다. 다만 기록에는 서기전 1세기~서기 1세기 초반에 마한 사회가 소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렇게 복속한 마한 소국들은 백제 한성과 가까운 거리의 존재로, 그 범위는 경기 일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강 유역과 경기 일대의 고고학적 증빙은 4세기 이후에 서서히 마한 문화가 소멸되기 때문이다.<br/> 한편, 『진서』에도 동이·마한과의 교류가 빈번하다. 이것은 3세기 후반까지 마한왕 주도의 마한 사회가 국제적으로 여전히 통용되는 존재였음을 뜻하지만 기록에는 4세기 후반에 이르면 백제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마한이 사라진다.<br/> 결국 문헌 사료에 따르면 마한 제국의 중심 국가로서 목지국은 2~3세기에 걸쳐 대표성을 갖는다. 하지만 3세기 중엽 중국의 군현 세력과 삼한 사회가 충돌하면서 중심국가로서 목지국의 위상과 영향력이 감소하였고, 그 사이에 백제국이 서서히 마한 사회의 중심으로 등장한 것이다.
Authors
- Byung-Nam Kim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Journal of Korean Ancient History
- Published
- 2025-12-31
- DOI
- https://doi.org/10.37331/jkah.2025.12.120.239
- Primary Topic
- Eurasian Exchange Network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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