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ngye Regime and Its Relationship with Local Regions: Focusing on the Review of Cheongju and Naju-related Research

이 글은 궁예정권과 청주・나주와의 관계 문제를 다룬 기존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살펴본 연구사 검토 논고이다.<br/> 궁예는 900년에 청주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904년에 ‘靑州人戶’ 1천을 새 수도 철원으로 옮기는 사민을 단행하였다. 그런데 철원과 청주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궁예가 청주의 백성을 먼 곳으로 옮긴 의도나 계기, 결과 등에 주목해 왔다.<br/> 특히 건국 이전 궁예의 행적 가운데 청주와 관련성을 엿볼 수 있는 단서를 찾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았던 연구자를 중심으로, 궁예가 태어났다는 ‘外家’를 청주로 비정하는 논의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여러 지역 가운데 왜 청주가 사민의 대상으로 선택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다.<br/> 청주인호 사민의 문제는 철원으로의 천도 및 국호 개칭의 문제와 연계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 사안들 또한 쟁론의 대상인지라, 여기에 후삼국 이전 청주의 역사적 위상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청주는 ‘전삼국시대’에도 여러 세력권의 각축장이던 만큼, ‘후삼국시대’ 또한 이곳의 지리적 위치가 주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br/> 한편 나주는 9세기 후반까지 견훤이 차지하고 있었다가 궁예에게 귀부한 공간이다. 궁예의 군대가 육로를 통해 후백제의 영역을 관통하여 이곳을 점령할 수는 없으므로, 궁예정권의 수군이 후백제의 배후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고려사』 사이에 그 시점을 놓고 격절이 자못 심하다. 또한, 이들 사서에는 이 남방 지역의 공략 주체를 왕건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강진 무위사 선각대사비」를 재해석하여 궁예가 친히 출정했다고 보는 시각도 제기되었다. 근래에 다시 이에 대한 반론이 제출되는 등, 나주 점령의 시점과 그 주체를 놓고 이견이 만만치 않다.<br/> 특정 역사에 대한 자료 간의 상충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특정 기록물의 정보를 ‘선택’하거나 혹은 일방의 손상 없이 ‘종합’하도록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 합의가 녹록치 않은 나주 경략의 경우, 무엇보다 삼국사기와 고려사가 ‘같은 사건’을 전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그에 앞서 각 자료의 자체 논리에 대한 탐색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SILLASAHAKPO
Published
2025-12-31
DOI
https://doi.org/10.65509/jshs.2025.12.65.41
Primary Topic
Korean Urban and Social Studies
Type
article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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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Gungye Regime and Its Relationship with Local Regions: Focusing on the Review of Cheongju and Naju-related Research

Chang-woo Hong
SILLASAHAKPO
Korean Urban and Social Studies
article

Gungye Regime and Its Relationship with Local Regions: Focusing on the Review of Cheongju and Naju-related Research

Chang-woo Hong
article en

Abstract

이 글은 궁예정권과 청주・나주와의 관계 문제를 다룬 기존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살펴본 연구사 검토 논고이다.<br/> 궁예는 900년에 청주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904년에 ‘靑州人戶’ 1천을 새 수도 철원으로 옮기는 사민을 단행하였다. 그런데 철원과 청주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궁예가 청주의 백성을 먼 곳으로 옮긴 의도나 계기, 결과 등에 주목해 왔다.<br/> 특히 건국 이전 궁예의 행적 가운데 청주와 관련성을 엿볼 수 있는 단서를 찾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았던 연구자를 중심으로, 궁예가 태어났다는 ‘外家’를 청주로 비정하는 논의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여러 지역 가운데 왜 청주가 사민의 대상으로 선택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다.<br/> 청주인호 사민의 문제는 철원으로의 천도 및 국호 개칭의 문제와 연계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 사안들 또한 쟁론의 대상인지라, 여기에 후삼국 이전 청주의 역사적 위상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청주는 ‘전삼국시대’에도 여러 세력권의 각축장이던 만큼, ‘후삼국시대’ 또한 이곳의 지리적 위치가 주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br/> 한편 나주는 9세기 후반까지 견훤이 차지하고 있었다가 궁예에게 귀부한 공간이다. 궁예의 군대가 육로를 통해 후백제의 영역을 관통하여 이곳을 점령할 수는 없으므로, 궁예정권의 수군이 후백제의 배후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고려사』 사이에 그 시점을 놓고 격절이 자못 심하다. 또한, 이들 사서에는 이 남방 지역의 공략 주체를 왕건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강진 무위사 선각대사비」를 재해석하여 궁예가 친히 출정했다고 보는 시각도 제기되었다. 근래에 다시 이에 대한 반론이 제출되는 등, 나주 점령의 시점과 그 주체를 놓고 이견이 만만치 않다.<br/> 특정 역사에 대한 자료 간의 상충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특정 기록물의 정보를 ‘선택’하거나 혹은 일방의 손상 없이 ‘종합’하도록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 합의가 녹록치 않은 나주 경략의 경우, 무엇보다 삼국사기와 고려사가 ‘같은 사건’을 전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그에 앞서 각 자료의 자체 논리에 대한 탐색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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