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Gyehwa’s Buddhist Patronage at Mujangsa: A Case of Female Royal Patronage in Silla

본 논문은 제39대 소성왕(재위 799~800)의 비 계화왕후가 9세기 초 죽은 남편을 위해 무장사에서 행한 佛事의 특징과 중요성을 조명하였다. 계화왕후의 무장사 불사는 신라 왕실 발원 불사임에도 불구하고 현존 유물이 적은 이유로 학계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나 절터에서 수습된 〈무장사비〉의 비문과 󰡔삼국유사󰡕에 수록된 「무장사 미타전」, 그리고 사지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과 쌍신두 귀부 등을 통해 계화왕후가 추진한 불사의 면모를 재구성하고 그 중요성을 논구할 수 있다.<br/> 이들을 바탕으로 본 논문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우선 신라 왕실 발원 불사이자, 왕실 여성의 추선 불사라는 맥락 속에서 계화왕후의 불사를 그에 앞선 신문왕의 비 신목태후, 경덕왕의 비 만월태후의 불사와 비교, 분석하였다. 계화왕후의 경우,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아들을 대신하여 선왕을 위한 추복 불사를 했다는 점에서 앞선 두 태후의 사례와 유사하지만, 정치적 위상과 소재, 그리고 왕경 외곽의 심산유곡에 있는 작은 사찰을 장소로 삼은 것에는 차이가 있음을 지적했다. 둘째, 〈무장사비〉 비문에 보이는 ‘密藏’이라는 표현을 근거로 계화왕후가 발원한 미타상의 도상이 묘관찰지인을 결한 밀교계 아미타불상이었을 가능성을 검토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절터에 남아 있는 쌍신두 귀부의 조형에 주목하여, 창림사-무장사-법광사(포항)-숭복사로 이어지는 원성왕계 사찰로서의 상징성을 되짚어 보았다. 특히 창림사지 삼층석탑 및 귀부와의 연관성을 검토하여, 무장사지 쌍신두 귀부는 이후 원성왕계 사찰의 상징성을 공고히 하는 교두보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 추정해 보았다.<br/> 이를 통해 본 논문은 9세기 초 계화왕후의 불사는 중대 신라의 추선 불사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하대 신라의 서막을 알리는, 이른바 복고와 창신의 양면을 지녔을 뿐 아니라, 신라 왕실 여성이 주도한 불사로서 신라 여성사와 한국 불교 미술사의 이해에 중요한 기준점을 제공하는 사례임을 강조했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SILLASAHAKPO
Published
2025-08-31
DOI
https://doi.org/10.65509/jshs.2025.08.64.61
Primary Topic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Type
article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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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Queen Gyehwa’s Buddhist Patronage at Mujangsa: A Case of Female Royal Patronage in Silla

Sun-ah Choi
SILLASAHAKPO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article

Queen Gyehwa’s Buddhist Patronage at Mujangsa: A Case of Female Royal Patronage in Silla

Sun-a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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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 논문은 제39대 소성왕(재위 799~800)의 비 계화왕후가 9세기 초 죽은 남편을 위해 무장사에서 행한 佛事의 특징과 중요성을 조명하였다. 계화왕후의 무장사 불사는 신라 왕실 발원 불사임에도 불구하고 현존 유물이 적은 이유로 학계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나 절터에서 수습된 〈무장사비〉의 비문과 󰡔삼국유사󰡕에 수록된 「무장사 미타전」, 그리고 사지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과 쌍신두 귀부 등을 통해 계화왕후가 추진한 불사의 면모를 재구성하고 그 중요성을 논구할 수 있다.<br/> 이들을 바탕으로 본 논문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우선 신라 왕실 발원 불사이자, 왕실 여성의 추선 불사라는 맥락 속에서 계화왕후의 불사를 그에 앞선 신문왕의 비 신목태후, 경덕왕의 비 만월태후의 불사와 비교, 분석하였다. 계화왕후의 경우,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아들을 대신하여 선왕을 위한 추복 불사를 했다는 점에서 앞선 두 태후의 사례와 유사하지만, 정치적 위상과 소재, 그리고 왕경 외곽의 심산유곡에 있는 작은 사찰을 장소로 삼은 것에는 차이가 있음을 지적했다. 둘째, 〈무장사비〉 비문에 보이는 ‘密藏’이라는 표현을 근거로 계화왕후가 발원한 미타상의 도상이 묘관찰지인을 결한 밀교계 아미타불상이었을 가능성을 검토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절터에 남아 있는 쌍신두 귀부의 조형에 주목하여, 창림사-무장사-법광사(포항)-숭복사로 이어지는 원성왕계 사찰로서의 상징성을 되짚어 보았다. 특히 창림사지 삼층석탑 및 귀부와의 연관성을 검토하여, 무장사지 쌍신두 귀부는 이후 원성왕계 사찰의 상징성을 공고히 하는 교두보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 추정해 보았다.<br/> 이를 통해 본 논문은 9세기 초 계화왕후의 불사는 중대 신라의 추선 불사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하대 신라의 서막을 알리는, 이른바 복고와 창신의 양면을 지녔을 뿐 아니라, 신라 왕실 여성이 주도한 불사로서 신라 여성사와 한국 불교 미술사의 이해에 중요한 기준점을 제공하는 사례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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