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gnificance of the Goryeo Roof Tiles Excavated from 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in Gyeongju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는 지금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이 출토되었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瓦塼類이다. 와전류의 대부분은 7세기 후반~10세기 전반으로 편년되는데, 日暉⽂ 막새를 비롯한 고려 기와도 일부 확인된다. 1978년에 발간된『雁鴨池 發掘調査報告書』에 수록된 고려 기와는 그동안 황룡사에서 유입된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고려 기와 가운데는 발굴조사보고서에 실리지 않은 것도 있고 일제강점기에 출토된 것도 있어서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br/>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고려 기와는 대체로 월지의 서쪽 湖岸 또는 남쪽 호안과 인접한 지점에서 출토되었거나 월지 서편 건물군에서 출토되었음이 확인된다. 그런데 월지와 황룡사의 사이에 자리한 월지 동편의 가 · 나지구에서는 일휘문 막새가 출토된 적이 없으며, 월지에서 출토된 日暉 · 雲⽂ 수막새는 황룡사에서 출토된 적이 없는 형식이다. 이는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고려 기와가 황룡사에서 유입된 것이 아니라 원래 사용처가 월지 주변의 건물이었음을 시사한다. 나아가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고려 기와는 적어도 월지 주변의 일부 건물이 일휘문 막새가 등장하는 11세기 중엽까지 남아 있었음을 알려준다.<br/>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고려 기와 가운데 附椽瓦가 포함된 점도 주목되는데, 통일신라 때 월지 주변의 건물은 서까래와 附椽의 끝부분을 ⾦銅 透彫 裝飾으로 마감 · 장식했기 때문에 椽木瓦 및 부연와는 출토된 적이 없다. 따라서 비록 1점에 불과하지만 고려시대의 부연와가 출토되었다는 사실은 월지 주변에 남아 있던 건물을 유지 · 보수하는 방식을 짐작하게 한다. 아울러 권위건물로서의 전반적인 외형은 고려시대까지 이어졌다고 하더라도 건물을 장엄하는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여 건물 자체의 위상은 통일신라시대에 비해 낮아진 것으로 판단된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SILLASAHAKPO
Published
2024-08-31
DOI
https://doi.org/10.65509/jshs.2024.08.61.233
Primary Topic
Building materials and conservation
Typ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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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gnificance of the Goryeo Roof Tiles Excavated from 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in Gyeongju

Hyun-tae Lee
SILLASAHAKPO
Building materials and conser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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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gnificance of the Goryeo Roof Tiles Excavated from 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in Gyeongju

Hyun-ta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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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는 지금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이 출토되었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瓦塼類이다. 와전류의 대부분은 7세기 후반~10세기 전반으로 편년되는데, 日暉⽂ 막새를 비롯한 고려 기와도 일부 확인된다. 1978년에 발간된『雁鴨池 發掘調査報告書』에 수록된 고려 기와는 그동안 황룡사에서 유입된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고려 기와 가운데는 발굴조사보고서에 실리지 않은 것도 있고 일제강점기에 출토된 것도 있어서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br/>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고려 기와는 대체로 월지의 서쪽 湖岸 또는 남쪽 호안과 인접한 지점에서 출토되었거나 월지 서편 건물군에서 출토되었음이 확인된다. 그런데 월지와 황룡사의 사이에 자리한 월지 동편의 가 · 나지구에서는 일휘문 막새가 출토된 적이 없으며, 월지에서 출토된 日暉 · 雲⽂ 수막새는 황룡사에서 출토된 적이 없는 형식이다. 이는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고려 기와가 황룡사에서 유입된 것이 아니라 원래 사용처가 월지 주변의 건물이었음을 시사한다. 나아가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고려 기와는 적어도 월지 주변의 일부 건물이 일휘문 막새가 등장하는 11세기 중엽까지 남아 있었음을 알려준다.<br/>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고려 기와 가운데 附椽瓦가 포함된 점도 주목되는데, 통일신라 때 월지 주변의 건물은 서까래와 附椽의 끝부분을 ⾦銅 透彫 裝飾으로 마감 · 장식했기 때문에 椽木瓦 및 부연와는 출토된 적이 없다. 따라서 비록 1점에 불과하지만 고려시대의 부연와가 출토되었다는 사실은 월지 주변에 남아 있던 건물을 유지 · 보수하는 방식을 짐작하게 한다. 아울러 권위건물로서의 전반적인 외형은 고려시대까지 이어졌다고 하더라도 건물을 장엄하는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여 건물 자체의 위상은 통일신라시대에 비해 낮아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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