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cess of Silla’s Expansion into the Upper Reaches of the Namhan River from the Late 5th Century to the Mid-6th Century

본 논문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까지 신라의 남한강 상류 진출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신라는 자비 마립간 11년(468) 니하성 축조를 시작으로 남한강 최상류 지역으로 진출을 시작하였다. 정선의 고성리 산성, 영월 정양산성들을 추가로 축성하면서 관방체계의 완성과 영역화를 동시에 성공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축성은 기존의 인식처럼 방어를 위한 축성이 아닌 영역 확보라는 공세적 축성이라고 볼 수 있다.<br/> 또한 신라는 죽령을 통해서도 남한강 상류로 진출을 시도했다. 단양 당동리, 하방리 고분군의 발굴 성과를 살펴보면 5세기 후반~6세기 초반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는 고분들이 여럿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보면 단양 지역의 재지세력과의 교류, 포섭을 통해서 이 지역을 신라의 세력권 아래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후 신라는 단양의 공문성으로 추측되는 우산성을 고구려에게 빼앗기면서 단양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잃고 말았다.<br/> 신라는 6세기 중반 다시 남한강 상류로 진출을 시도하였다. 신라가 남한강 상류로 진출을 시도한 시기는 550년쯤으로 보인다. 548년~550년 고구려의 공격 방향이 충주 서남쪽으로 집중되는데 단양 지역을 뺏긴 상태라면 동쪽의 방어를 소홀히 하고 공격에 나선 것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무렵 도살성·금현성을 신라가 차지하면서 고구려의 방어가 충주 서남쪽으로 쏠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전황을 고려해 신라가 550년에 단양 적성을 공략하였다.<br/> 이후 신라는 고구려의 국원인 충주도 빠르게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진흥왕 12년(551) 3월의 낭성 순행기사에서 낭성을 충주로 파악할 수 있다. 진흥왕이 이 시기에 낭성을 순행했다는 것은 그 이전에 충주를 신라가 안정적으로 확보했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신라는 550년 부근에 정선~충주까지 남한강 상류를 모두 영역화했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SILLASAHAKPO
Published
2024-12-31
DOI
https://doi.org/10.65509/jshs.2024.12.62.327
Primary Topic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Typ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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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The Process of Silla’s Expansion into the Upper Reaches of the Namhan River from the Late 5th Century to the Mid-6th Century

Chang-min Koh
SILLASAHAKPO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article

The Process of Silla’s Expansion into the Upper Reaches of the Namhan River from the Late 5th Century to the Mid-6th Century

Chang-min Koh
article en

Abstract

본 논문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까지 신라의 남한강 상류 진출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신라는 자비 마립간 11년(468) 니하성 축조를 시작으로 남한강 최상류 지역으로 진출을 시작하였다. 정선의 고성리 산성, 영월 정양산성들을 추가로 축성하면서 관방체계의 완성과 영역화를 동시에 성공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축성은 기존의 인식처럼 방어를 위한 축성이 아닌 영역 확보라는 공세적 축성이라고 볼 수 있다.<br/> 또한 신라는 죽령을 통해서도 남한강 상류로 진출을 시도했다. 단양 당동리, 하방리 고분군의 발굴 성과를 살펴보면 5세기 후반~6세기 초반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는 고분들이 여럿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보면 단양 지역의 재지세력과의 교류, 포섭을 통해서 이 지역을 신라의 세력권 아래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후 신라는 단양의 공문성으로 추측되는 우산성을 고구려에게 빼앗기면서 단양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잃고 말았다.<br/> 신라는 6세기 중반 다시 남한강 상류로 진출을 시도하였다. 신라가 남한강 상류로 진출을 시도한 시기는 550년쯤으로 보인다. 548년~550년 고구려의 공격 방향이 충주 서남쪽으로 집중되는데 단양 지역을 뺏긴 상태라면 동쪽의 방어를 소홀히 하고 공격에 나선 것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무렵 도살성·금현성을 신라가 차지하면서 고구려의 방어가 충주 서남쪽으로 쏠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전황을 고려해 신라가 550년에 단양 적성을 공략하였다.<br/> 이후 신라는 고구려의 국원인 충주도 빠르게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진흥왕 12년(551) 3월의 낭성 순행기사에서 낭성을 충주로 파악할 수 있다. 진흥왕이 이 시기에 낭성을 순행했다는 것은 그 이전에 충주를 신라가 안정적으로 확보했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신라는 550년 부근에 정선~충주까지 남한강 상류를 모두 영역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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