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emale Ancestors and Taekju of Geumiptaek in Silla: Focusing on Jaemaejeongtaek and Jangsataek
본고는 新羅 중앙 귀족의 여성 산신・시조신 숭배를 일부 ⾦⼊宅의 사례 중심으로 분석했다. 신라 上古期에 여성 산신과 여사제의 위상이 높았으나, 불교・유교・가부장제의 확산에 따라 그들의 존재감은 옅어졌다. 특정 금입택에 거주하던 가계와 산신의 관계를 통해 산신 신앙과 여사제의 전통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추적했다. ⾦庾信의 저택으로 유명한 財買井宅에 거주하던 가계는 財買夫人을 시조로 제사하는 혈연 공동체였다. 동명의 우물이 있고, 무덤에서 후손들이 봄 제사를 올리는 재매부인은 신라 시조 閼英과 공통점이 많다. 저택에 신성한 우물이 있는 점은 ⾼麗 왕실의 시조 중 ⿓⼥(元昌王后)와 비교할 수 있다. 재매부인은 수신・용신의 속성을 가진 시조신이며, 재매곡에 묻힌 산신이다. 김유신의 부계 조상은 ⾦官伽倻 왕족이었지만, 어느 세대에선가 재매정택에 장가들었다. 김유신 가계는 금관가야 왕가의 후예인 동시에 재매부인의 후손으로서 정체성을 지니게 되었고, 그들이 신라 사회에서 빠르게 적응하고 성공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男歸⼥家婚・데릴사위 등이 흔했던 당시의 가족 제도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br/> ⻑沙宅에 거주하던 가계는 鵄述 神⺟를 시조로 제사하는 혈연 공동체였다. 치술 신모는 鵄述嶺의 산신이자 충신 堤上의 아내였다. 문헌에서 치술 신모는 제상의 아내로 언급될 뿐이지만, 치술 신모와 치술령 망부석에 얽힌 구비 문학이 독립적으로 전승되었다. 또 치술 신모가 남편을 잃고 울부짖던 ⻑沙・伐知旨, 사망한 치술령의 隱乙庵 등, 치술 신모 관련 성소가 다수 존재한다. 장사택에 거주하던 후손들이 치술 신모를 오랫동안 시조로 모신 결과로 보인다. 치술 신모는 사위의 정변으로 사망한 실성이사금의 딸이자, 희생적인 충신 제상의 아내로서,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訥祗麻⽴⼲은 처제인 치술 신모와 그 후손을 후대했고, 치술 신모의 원통함과 절개는 치술 신모 제사 및 설화의 핵심이 되었다. 동해를 바라보는 치술령에 좌정한 치술 신모는 동해를 지키는 산신으로 혈연을 넘어 폭넓게 숭배받았다.<br/> 시조를 산에서 제사하는 가정신앙은 금입택의 여성 시조 제사와 유사한 면이 있다. 특히 재매부인 제사는 강원도의 민속 산메기와 공통점이 많다. 산과 조상신을 대접하는 산메기는 혈연 공동체 중심의 봄나들이이며, 여성이 제사를 주도한다. 안동 지역 문중의 산할매 제사 역시 산에서 여성이 여성 시조를 모시는 형식이다. 여신과 여사제의 위상이 컸던 신라 시대 금입택 제사 역시 여성이 주도권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일부 여성이 사용하던 칭호인 택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궁주・택주는 여성의 거주지와 경제력을 표시하는 칭호로, 왕족・ 귀족 여성은 궁・택의 경제권을 바탕으로 불사를 후원했다. 시조 제사 역시 택주의 주도 아래 이루어졌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택주는 상고기 여사제의 후예로, 친족을 결집하는 신앙과 경제적 이해관계의 중심에 서 있었다.
Authors
- Dong-in Baek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SILLASAHAKPO
- Published
- 2025-08-31
- DOI
- https://doi.org/10.65509/jshs.2025.08.64.15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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