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ation of the “Four-Person Group” in 1969 and the Transformation of Chinese Foreign Policy
본 논문은 1969년 ‘사인소조(四人小組)’의 구성과 활동을 분석함으로써 중국 외교노선의 전환 과정을 고찰하였다. 1969년 진보도(珍寶島) 사건을 계기로 중국은 소련의 군사적 압박을 중대한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였으며, 동시에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외교체계의 마비와 국제적 고립을 수습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이 결합하면서 중국 외교는 경직된 혁명 노선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략적 활로를 모색하게 되었다.마오쩌둥은 천이(陳毅), 예젠잉(葉劍英), 쉬샹첸(徐向前), 녜룽전(聶榮臻) 등 군 원로를 중심으로 ‘사인소조’를 조직하고 국제정세의 평가와 대응 전략 마련을 지시하였다. 소조는 정례적인 토론과 보고서를 통해 소련을 미국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대소 견제와 대미 접근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인소조는 단순한 자문기구를 넘어 중공지도부가 전략적 방향 전환을 검토하고 정책적 합의를 도출하는 실질적 기능을 수행하였다.본 연구는 사인소조의 사례를 통해 문화대혁명기의 중국 외교가 단순히 혼란과 고립의 시기가 아니라 외부 위협과 내부 필요를 조정하며 실용주의적 전환을 준비한 시기였음을 밝힌다. 나아가 사인소조의 활동이 이후 미·중 관계 정상화의 정책적 토대를 제공하였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분석은 중국 외교정책이 이념적 구호에 매몰된 경직된 노선이 아니라 변화하는 국제구조와 안보 현실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되었음을 드러내며, 냉전기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 중국 외교의 전략적 선택과 역사적 의미를 재평가하는 데 기여한다.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DAEGU HISTORICAL REVIEW
- Published
- 2025-08-31
- DOI
- https://doi.org/10.17751/dhr.160.319
- Primary Topic
- Gender and Technology in Education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