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al Implications of the Daewongun Jonbong Euijeol(大院君尊奉儀節)

大院君은 세 번 집권했고, 세 번 물러났으며, ‘존봉의절’도 3번 제정되었다. 제1차 ‘大院君尊奉儀節’은 대원군이 직접 구상하고 적용했다. 대원군에 대한 법제적 지위와 규정이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대신들과의 차별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본인에 대한 체례 규정을 중시했고, ‘시생’, ‘소인’의 호칭을 통해 대신들을 통제하고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 마련이 목적이었다. 대원군은 대신들과 상하관계를 형성하면서 통치정책을 수행했다. 팔인교 乘輿와 흉배, 품대 등의 儀章은 대신들과의 차별화의 표면화였고, 이를 통해 대원군은 권력행사의 정당성을 확보했다.제2차 ‘대원군존봉의절’은 대원군과의 정치적 위상을 고려해 고종이 구상했다. 운현궁 대문 앞에 하마비를 세우고, 횡강목을 설치해 신료와 잡인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대원군은 고종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 이러한 조치를 수용했지만, 傳命하는 신하들은 자유롭게 출입했다. ‘소생’의 호칭을 통해 대원군의 관계적 위상은 국왕보다 아래에 놓여 신하의 반열에 자리매김했다. 그렇지만 대원군과 운현궁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지 않았고, 대원군은 수시로 양주의 직곡과 공덕리 별장을 왕래했다.제3차 ‘대원군존봉의절’은 궁내부가 종래의 규정을 보완했다. 대원군의 정치활동의 억제와 동시에 보호하려는 측면이 공존한다. 궁내부는 종래의 儀章을 유지하면서 횡강목을 사방의 대문에 설치하여 통제를 강화했다. 경무청의 총순과 순검이 윤회입직했지만, 각국의 공사들과 관리들은 대원군에 대한 敬禮를 위해 운현궁을 자유롭게 출입했다. 대원군의 외교활동을 위한 배려였다. 대원군의 호종과 경호업무는 궁내부가 맡았다. 대원군의 행차에 궁내부 관원들이 배종했고, 총순과 순검은 擊衛를 담당했다.대원군의 장자 이재면이 궁내부대신으로 책임자였다. ‘대원군존봉의절’은 대원군의 감금과 정치적 유폐가 목적이 아니었다. 대원군을 국내 정치로부터 보호하고, 외교적 활동을 보장하는 조치의 성격이 공존했다. ‘대원군존봉의절’이 대원군과 고종, 대원군과 민비와의 갈등의 결과물로 대원군을 운현궁에 유폐하거나 감금했다는 평가는 재고되어야 한다.

Publication Details

Journal
THE DAEGU HISTORICAL REVIEW
Published
2025-08-31
DOI
https://doi.org/10.17751/dhr.160.47
Primary Topic
Aquaculture Nutrition and Growth
Typ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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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al Implications of the Daewongun Jonbong Euijeol(大院君尊奉儀節)

THE DAEGU HISTORICAL REVIEW
Aquaculture Nutrition and 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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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al Implications of the Daewongun Jonbong Euijeol(大院君尊奉儀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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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大院君은 세 번 집권했고, 세 번 물러났으며, ‘존봉의절’도 3번 제정되었다. 제1차 ‘大院君尊奉儀節’은 대원군이 직접 구상하고 적용했다. 대원군에 대한 법제적 지위와 규정이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대신들과의 차별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본인에 대한 체례 규정을 중시했고, ‘시생’, ‘소인’의 호칭을 통해 대신들을 통제하고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 마련이 목적이었다. 대원군은 대신들과 상하관계를 형성하면서 통치정책을 수행했다. 팔인교 乘輿와 흉배, 품대 등의 儀章은 대신들과의 차별화의 표면화였고, 이를 통해 대원군은 권력행사의 정당성을 확보했다.제2차 ‘대원군존봉의절’은 대원군과의 정치적 위상을 고려해 고종이 구상했다. 운현궁 대문 앞에 하마비를 세우고, 횡강목을 설치해 신료와 잡인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대원군은 고종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 이러한 조치를 수용했지만, 傳命하는 신하들은 자유롭게 출입했다. ‘소생’의 호칭을 통해 대원군의 관계적 위상은 국왕보다 아래에 놓여 신하의 반열에 자리매김했다. 그렇지만 대원군과 운현궁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지 않았고, 대원군은 수시로 양주의 직곡과 공덕리 별장을 왕래했다.제3차 ‘대원군존봉의절’은 궁내부가 종래의 규정을 보완했다. 대원군의 정치활동의 억제와 동시에 보호하려는 측면이 공존한다. 궁내부는 종래의 儀章을 유지하면서 횡강목을 사방의 대문에 설치하여 통제를 강화했다. 경무청의 총순과 순검이 윤회입직했지만, 각국의 공사들과 관리들은 대원군에 대한 敬禮를 위해 운현궁을 자유롭게 출입했다. 대원군의 외교활동을 위한 배려였다. 대원군의 호종과 경호업무는 궁내부가 맡았다. 대원군의 행차에 궁내부 관원들이 배종했고, 총순과 순검은 擊衛를 담당했다.대원군의 장자 이재면이 궁내부대신으로 책임자였다. ‘대원군존봉의절’은 대원군의 감금과 정치적 유폐가 목적이 아니었다. 대원군을 국내 정치로부터 보호하고, 외교적 활동을 보장하는 조치의 성격이 공존했다. ‘대원군존봉의절’이 대원군과 고종, 대원군과 민비와의 갈등의 결과물로 대원군을 운현궁에 유폐하거나 감금했다는 평가는 재고되어야 한다.

THE DAEGU HISTORICAL REVIEWVol.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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