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the Political and Cultural Separation Process of the Buyeo People of the Japanese Islands in the Late Fourth and Early Fifth Centuries
본고에서는 부여계 도래인의 후손에 의해 개척되었던 왜(倭)가 패권적 신분질서를 공고히 해나가면서 부도복건론(符都復建論)을 중심으로 한 범부여족 연합에서 정치⋅문화적으로 분리되어 나간 과정을 연구했다.<br/> 4∼5세기는 이러한 분립이 공고히 자리잡은 시기라 볼 수 있다. 박제상기사를 중심으로 주로 4∼5세기 신라와 왜의 대외관계에 대해 다룰 것이다. 박제상기사는 식민사학의 소재로 쓰였으며, 현재까지도 일인학자에 의해 신라에 대한 왜의 우위로 해석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이에 박제상에 관한 제 사서를 비교하고, 고고학적 증거와 관련기사를 전후한 상황을 분석하여 다시금 재해석했다.<br/> 그 결과, 왜에 파견한 미사흔의 질자(質子)로서의 성격과 부여족 국가간 통혼(通婚)을 비롯한 정치ㆍ군사적 통호 및 대립관계를 통해 오히려 신라에 비해 왜가 열세였음을 확인했다. 따라서, 『일본서기』에 나오는 신라정벌기사는 이러한 것을 감추기 위한 변명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었다.<br/> 왜가 부여족 연합에서 이탈한 원인은 부도복건에 대한 의지를 상실하고 눈에 보이는 패권적신분질서에 천착해 나간 것에서 비롯했다. 여기에, 삼국에서도 가장 한미한 수준이라 여겼던 신라에게 조차 무시를 당했다고 여기며 점차 정치ㆍ문화적으로 분립되어 갔다.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Journal of Northeast Asia Ancient History
- Published
- 2025-08-31
- DOI
- https://doi.org/10.47527/jnah.2025.08.13.127
- Primary Topic
- Legal Cases and Commentary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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