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won Hwaseong Military farmland and the theory of Well-field system during Jeongjo’s reign - Focusing on research of Yu Heung-wonand Lee Seok-jo -
정조대 수원 화성의 이미지는 국가 중심의 개혁론을 정면으로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정조가 統軍治國의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정국을 운영하면서, 전례 없는 수도권 신도시를 개발한 것은 왕조 역사상 전대미문의 사건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사실 역사적 실체에 대한 접근은 시대적 맥락에서 분석되어야 정합적인 성찰이 가능한 것이다. 왕조의 개국부터 농업 경제를 기반으로 한 성리학 체제의 통치개념은 군제의 유지와 개편을 좌우하던 기준이었다. 생산과 소출, 세입과 세출이 농업 경제에 밀착되어 있는 상황에서 토지의 안정적 공급 및 운영을 최우선으로 하던 전례에 천착하던 것은 오히려 당연한 소치일 것이다. 이에 국왕과 사대부가 공통으로 지향하던 체제가 정조대 화성의 조성에 반영되고 나타났으며, 둔전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화성의 둔전은 병농 일치라는 개념이 적용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정전제 개념의 현실화라고도 판단된다. 또한 정전제를 통한 병농일치는 국가 재정의 절용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정조가 추구한 이상적 古制인 왕도 정치 구현의 첫 단계인 것이다. 당대에 이미 사적 소유가 광범위하게 인정되던 상황에서, 화성을 매개로 둔전을 개발해서 정전제 개념에 준하여 관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조의 화성 둔전 개발은 지역 사대부인 이석조의 주장을 수렴한 형태이기도 하였으며, 유형원으로부터 전래되던 변통론의 계승 및 적용이라는 역사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화성의 둔전은 군사 시설과 군병의 운영을 위한 토대였던 것은 물론 정조대 국정 철학이 반영되었던 기념비적인 장소였음을 제시하고 있었다.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Journal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 Published
- 2025-08-31
- DOI
- https://doi.org/10.21490/jskh.2025.8.100.37
- Primary Topic
- Geochemistry and Geologic Mapping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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