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orcement of Japanese Missionary Rules and Resistance of Dong-A Christian Church
일제는 조선의 기독교를 통제·관리하기 위해서 1915년에 포교규칙을 공포했다. 이때 각 교단은 포교 관리자, 포교 담임자, 포교소 설치에 관련된 사항을 갖춰서 조선 총독의 인가를 받아야 했다. 포교규칙을 시행한 목적은 조선의 기독교를 ‘일본식 기독교화’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일제는 3단계 전략을 사용했는데 첫째로 ‘분열 전략’이었다. 이것은 포교계 제출 건으로 신자들 간에 갈등과 분열을 조장시키는 것이었다. 둘째로 ‘핍박 전략’이었다. 천황이 곧 국체(國體)이고, 최고의 신이기에, 조선의 국체는 천황이 국가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이 일제의 목표였다. 이에 저항하는 신자들은 반국가적(反國家的) 인사로 분류되어 강력한 법적 처벌로 감금, 구타, 재산몰수에 이르기까지 피해를 주는 것이었다. 셋째로 ‘교회폐쇄 전략’이었다. 이것은 일제가 사용하는 최고의 강력한 무기로 일제가 추구하는 국체 사상, 황민화 정책에 반기를 드는 교회에 대해 집회 금지, 교회폐쇄까지 최고의 압박을 가하는 것이었다.일제의 압박은 ‘강→약→강’의 수위로 진행되었다. 동아기독교는 1915년부터 25년간 저항할 때는 무단정치와 문화정치 기간이었다. 이후 동화정치가 진행되던 1940년에 와서 이전에 포교계 제출을 거부당했던 동아기독교는 7월 15일에 재신청했고, 여기에는 동아기독교의 포교 관리자, 포교규칙, 포교계를 재신청한 이유, 연혁과 특징을 소개했다. 마침내 총독부의 승인을 받아 9월 9일 《조선총독부관보》에 게재되었다. 이후 관보에서는 동아기독교의 포교계 제출자, 포교 담임자 선정, 포교소 설치 현황이 게재되었다. 동아기독교가 포교계 제출을 거부했던 이유는 국교분리의 원칙, 종교 자유의 원칙, 신앙의 자유를 지키려는 정신 때문이었다. 그 결과는 교회분열을 일으켰고, 인재 유출을 가져왔고, 교회 퇴보를 만들었고, 어용 신자까지 배출되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일제가 노리는 속임수였다. 동아기독교가 ‘일본식 기독교화’를 반대하고 교회의 본질, 성경적 교회론을 지키려 했던 숭고한 신앙이 계승·발전되었으면 한다.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Journal of Korean Evangelical Missiological Society
- Published
- 2025-06-30
- DOI
- https://doi.org/10.20326/kems.70.2.121
- Primary Topic
- Microbial Natural Products and Biosynthesi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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