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peration and Conflict in the Founding of the Korean Communist Party
이 글의 목적은 조선공산당 결성을 둘러싸고 사회주의 여러 세력이 어떠한 태도를 보였는지를 확인하는 데에 있다. 조선공산당 창립 과정은 장기성과 복잡성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장기성이란 창당에 이르기까지 소요된 시간이 인접국에 비해 훨씬 길었음을 뜻한다. 조선공산당은 네 번째 창당운동의 결과로, 5년의 시간이 흐른 끝에 어렵사리 결성됐다. 창당 과정의 복잡성이란 창립대회준비위원회가 다수 명멸했음을 뜻한다. 무려 7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 여덟번째 성립한 준비위원회에 의해서 비로소 성공적인 창당대회가 개최됐다. 이러한 장기성과 복잡성을 낳은 원인 가운데 하나는 국제당 내부에 있었다. 두 개의 흐름이 교차했다. 쿠시넨을 비롯한 간부회 및 비서부의 고위 간부들은 보이틴스키를 필두로 하는 동방부의 실무진과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두 그룹의 불일치와 알력이 조선공산당 결성의 곤란성을 증폭시켰다. 국내외에 소재하는 복수의 사회주의 세력들은 1924-1925년 시기에 세 갈래 창당 운동을 전개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출현한 당준비회는 대통합론을 견지했다. 그에 반해서 서울에서 비밀리에 출현한 13인회는 내지통합론을 채택했다. 1924년 말에 출현한 4월당준비회는 소통합론을 추진했다. 국제당 동방부의 지도성을 인정하는, 국내 기반의 우수한 공산그룹들의 연합만으로도 공산당을 창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25년 4월17일 출범한 조선공산당은 소통합론의 결실이었다.
Authors
- Kyongsok Lim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YEOKSA YEONGU The Journal of History
- Published
- 2025-09-30
- DOI
- https://doi.org/10.31552/jh.2025.09.54.13
- Primary Topic
- Korean Peninsula Historical and Polit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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