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mperance Movement and the Minor Drinking Prohibition Act in Colonial Korea
1922년 일본에서 「미성년자 음주금지법」이 시행된 것을 계기로 식민지 조선에도 그것의 필요성을 요구하는 여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행정 당국의 소극적 대응과 지난한 과정을 걸쳐 전시체제의 1938년에 이르러서야 「미성년자끽연음주금지법」으로 제정되는 성과를 이루었다.<br/> ‘제국-식민지’의 지형 아래 해당 법안이 근근이 통과된 과정에서 노출된 ‘식민지적’ 배경과 갈등에 주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총독부가 ‘시기상조론’을 내세워 ‘제국-식민지’의 위계질서를 고수하려 한 점이다. 해당 법안 제정이 거의 확정된 최종 단계에서도 우려를 표한 총독부의 입장은 ‘민도의 수준이 낮다’라는 차별적 시각에 기반한 것으로, ‘제국의 법’이 유명무실해지고 권위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투영된 것임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는 ‘민도의 수준이 낮은 조선인의 음주 습관’에 대한 공권력의 강제적 단속이 민심의 반발과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부담도 포함되었다. 둘째, ‘사회교육과·학무국 대 경무국·심의국’으로 대변되는 총독부 내 갈등의 표출이다.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경무국이나 심의국과는 달리 사회교육은 생활개선운동과 교화 사업에서, 학무국은 교육 행정 차원에서 해당 법안을 시행하려는 입장으로 추측된다. 셋째, 일본내 동법이 이미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양가적 해석으로 내세워지는 지점이다. 식민지 조선의 금주운동가에게는 ‘민도가 낮을수록’ 혹은 ‘조선 재래의 미풍양속’을 이유로 일본과 같은 동법 시행을 요구하는 것이 주요 명분이자 타당한 이유가 되었고, 나아가서는 일본 금주운동 관계자의 지지와 응원 속에 긴밀한 관계 구축을 기대할 수 있는 동력이기도 했다. 이에 일본 본국과 같은 법령 제정 자체를 둘러싼 논의는 수반되지 않았고 금주 논리의 당위적 맥락에 따른 맹목적 추진력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총독부는 일본과 조선의 ‘민도 차이’에 연연하며 그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제거하지 못한 채 전시체제 아래 표상적 통합을 위한 기제이자 전략적 방편으로 해당 법안을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Authors
- Y. J Kim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YEOKSA YEONGU The Journal of History
- Published
- 2025-09-30
- DOI
- https://doi.org/10.31552/jh.2025.09.54.495
- Primary Topic
- Japanese History and Culture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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