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nguard Party’s Unification Movement and the Second Congress of the Korean Communist Party

1925년 후반기부터 전개된 통일적 전위당에 대한 조직 방침을 둘러싸고 ‘양당통합론’, ‘제3당론’, ‘분리·결합론’ 등 세 가지의 주된 견해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견해차는 1920년대 전반기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인식과 그 극복 방법을 둘러싼 이견의 노출이었다.<br/> ‘양당통합론’은 과거 사회주의운동과 파벌 문제를 사회주의운동의 필연적 과정이라고 평가하고,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동맹의 통합을 통해 통일적 전위당을 조직하자는 주장이다. ‘제3당론’은 과거 사회주의운동과 파벌 문제를 죄악시하고, 비파벌분자만의 통합으로 제3당을 조직하자는 주장이다. ‘분리·결합론’은 기존 조직의 내부에서, 파벌적 제요소로부터 조직적, 정치적 분리를 통해 통일적 전위당을 조직하자는 주장이다.<br/> 1926년 3월 코민테른의 조선공산당 승인과 6월 조선공산당 제2차 탄압사건으로 인해 전위당 통일운동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이 때 전위당 통일운동의 주도권을 쥔 것은 ‘분리·결합론’을 주장하던 레닌주의동맹과 그 관련자들이었다. 레닌주의동맹 구성원이자 고려공산청년회와 고려공산청년동맹의 책임비서인 고광수와 이인수의 주도로, 8월 11일 두 조직의 통합이 실현되었다. 이는 1925년 후반기부터 전개된 전위당 통일운동의 한 결절점이자, 1926년 12월 조선공산당 제2차 당 대회를 통해 결성되는 통일조선공산당과 이후 전개된 사회주의운동의 주류적 흐름이 형성된 것이었다.<br/> 조선공산당의 재건 작업은 9월부터 김철수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그는 고려공산동맹과 일월회의 사회주의자들과 접촉하였다. 그 결과 고려공산동맹은 11월 16일 조선공산당에 통합되었다.<br/> 이후 이들은 사회주의운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할 당을 출범시키기 위한 당 대회 개최에 주력하였다. 11월 28일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와 12월 5일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집행위원회는 당 대회 준비를 위한 사전 회합이었다.<br/> 1926년 12월 6일 조선공산당 제2차 당 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는 1925년 후반기부터 전개된 파벌청산과 사회주의운동 통일이라는 큰 흐름의 결과물이었다. 그 흐름을 주도했던 조직들은 ML파를 형성하였고, 이후 조선공산당과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하였다. 당 대회에서는 승인된 11개의 운동방침은 이후 식민지조선의 사회주의운동과 대중운동의 전개에 다대한 영향을 미쳤다.<br/> 제2차 당 대회를 통해 만들어진 조선공산당은 조직적, 이론적 지도를 통해 이후 전개된 한국사회주의운동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YEOKSA YEONGU The Journal of History
Published
2025-09-30
DOI
https://doi.org/10.31552/jh.2025.09.54.47
Primary Topic
Korean Peninsula Historical and Political Studies
Type
article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0.00
Controls
|||
ALL TIME
JAN
FEB
MAR
APR
MAY
JUN
JUL
AUG
SEP
OCT
article

The Vanguard Party’s Unification Movement and the Second Congress of the Korean Communist Party

Jong-rin Park
YEOKSA YEONGU The Journal of History
Korean Peninsula Historical and Political Studies
article

The Vanguard Party’s Unification Movement and the Second Congress of the Korean Communist Party

Jong-rin Park
article en

Abstract

1925년 후반기부터 전개된 통일적 전위당에 대한 조직 방침을 둘러싸고 ‘양당통합론’, ‘제3당론’, ‘분리·결합론’ 등 세 가지의 주된 견해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견해차는 1920년대 전반기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인식과 그 극복 방법을 둘러싼 이견의 노출이었다.<br/> ‘양당통합론’은 과거 사회주의운동과 파벌 문제를 사회주의운동의 필연적 과정이라고 평가하고,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동맹의 통합을 통해 통일적 전위당을 조직하자는 주장이다. ‘제3당론’은 과거 사회주의운동과 파벌 문제를 죄악시하고, 비파벌분자만의 통합으로 제3당을 조직하자는 주장이다. ‘분리·결합론’은 기존 조직의 내부에서, 파벌적 제요소로부터 조직적, 정치적 분리를 통해 통일적 전위당을 조직하자는 주장이다.<br/> 1926년 3월 코민테른의 조선공산당 승인과 6월 조선공산당 제2차 탄압사건으로 인해 전위당 통일운동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이 때 전위당 통일운동의 주도권을 쥔 것은 ‘분리·결합론’을 주장하던 레닌주의동맹과 그 관련자들이었다. 레닌주의동맹 구성원이자 고려공산청년회와 고려공산청년동맹의 책임비서인 고광수와 이인수의 주도로, 8월 11일 두 조직의 통합이 실현되었다. 이는 1925년 후반기부터 전개된 전위당 통일운동의 한 결절점이자, 1926년 12월 조선공산당 제2차 당 대회를 통해 결성되는 통일조선공산당과 이후 전개된 사회주의운동의 주류적 흐름이 형성된 것이었다.<br/> 조선공산당의 재건 작업은 9월부터 김철수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그는 고려공산동맹과 일월회의 사회주의자들과 접촉하였다. 그 결과 고려공산동맹은 11월 16일 조선공산당에 통합되었다.<br/> 이후 이들은 사회주의운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할 당을 출범시키기 위한 당 대회 개최에 주력하였다. 11월 28일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와 12월 5일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집행위원회는 당 대회 준비를 위한 사전 회합이었다.<br/> 1926년 12월 6일 조선공산당 제2차 당 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는 1925년 후반기부터 전개된 파벌청산과 사회주의운동 통일이라는 큰 흐름의 결과물이었다. 그 흐름을 주도했던 조직들은 ML파를 형성하였고, 이후 조선공산당과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하였다. 당 대회에서는 승인된 11개의 운동방침은 이후 식민지조선의 사회주의운동과 대중운동의 전개에 다대한 영향을 미쳤다.<br/> 제2차 당 대회를 통해 만들어진 조선공산당은 조직적, 이론적 지도를 통해 이후 전개된 한국사회주의운동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YEOKSA YEONGU The Journal of HistoryVol. 54
Openalex Percentile: Top 59%
Korean Peninsula Historical and Political Studies
AI Navigator

Ask Laika to Summarize, Analyze, and Connect papers live on the map.

Summarize Papers & Methodologies

Extract key findings, datasets, and comparative methods across publications.

Benchmark Rankings & Visual Analytics

Rank top research institutions, authors, funders, topics, and journals by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FWCI) and paper volume with instant charts.

Connect Distant Disciplines

Bridge topological clusters on the map to find hidden collaborative intersections.

The Vanguard Party’s Unification Movement and the Second Congress of the Korean Communist Party — Jong-rin Park · YEOKSA YEONGU The Journal of History (2025) | TGRS Research Map | TG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