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oul Communist Group’s Labor Movement Directions in the Early 1920s
이 글의 목적은 1920년대 전반 서울파 공산그룹의 노동운동 방침과 그 변화를 설명하는 데에 있다. 1922년 하반기 서울파 공산그룹은 조선노동대회를 통해 경성자유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차금봉 그룹’을 통해 조선노동공제회에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노동운동에 관계했다. 이러한 서울파 공산그룹 노동운동 방침은 서울파 공산그룹의 독자적인 조직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한편 1922년 하반기 서울파 공산그룹은 경성자유노동조합과 조선노동공제회를 통해 ‘순수 노동자 단결론’을 제기했다. 이러한 주장은 초기 서울파 공산그룹이 수용했던 맑스주의와 아나키즘을 비롯한 다양한 사상적 조류를 포괄하는 반자본주의 사상의 흔적을 보여준다.<br/> 1923년부터 서울파 공산그룹은 ‘물산장려논쟁’을 계기로 ‘신생활사 그룹’, ‘재일본 상해파 그룹’과 연합해 서상합동 그룹을 결성했다. 서상합동 그룹은 1923년 9월부터 사상단체 민중사를 설립하고 맑스주의 원전의 번역과 보급에 나섰고, 조선노농대회 소집과 준비회 결성을 통해 합법 영역에서의 공동 행동을 전개했다. 당시 서상합동 그룹은 조선노농대회 소집과 준비회를 결성하면서 발표한 선언을 통해 노동자와 농민이 중심이 된 소작단체와의 연대를 주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1922년 말부터 1923년에 이르는 기간 나타난 전국적인 소작쟁의의 확대, 노동자를 비롯한 무산계급의 능동적인 계급투쟁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서상합동 그룹의 인식, 그리고 1923년 9월 고려총국 내지부의 ‘조선노농총동맹’ 결성 움직임에 대한 대응과 같은 요인들이 작동한 결과였다.<br/> 조선노농대회준비회 참가 신청 결과 전국적으로 42개 단체가 참가했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평안남도에서 큰 호응을 받았으며, 특히 부(府)지역에 소재한 단체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또 소작단체의 참여를 독려했으나 실제 참여율은 떨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은 1920년대 중반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의 연대가 점차 구체화했음을 보여준다.
Authors
- Bomin Choi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YEOKSA YEONGU The Journal of History
- Published
- 2025-09-30
- DOI
- https://doi.org/10.31552/jh.2025.09.54.169
- Primary Topic
- Korean Peninsula Historical and Polit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