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Domination and Cooperation: Okjeo and Ye’s Responses to Shifting International Orders
본 논문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동해안 지역의 옥저와 예가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어떠한 대응 전략을 취하였는가를 고찰하였다. 기존 연구가 이들을 위만조선·한군현·고구려에 예속된 수동적 집단으로 파악한 데 반해, 본고는 국제정치학의 시각을 참조하여 이들의 능동적 선택에 주목하였다.<br/> 기원전 2∼1세기에는 위만조선과의 관계 속에서 옥저·예가 구분되는 과정이 확인된다. 예군남려의 요동 내속과 창해군 설치는 이 지역 집단이 국제정세 변화에 반응한 사례라 하겠다. 이어 기원 전후의 시기에는 한군현의 설치와 재편 과정 속에서 옥저(부조현)와 예(불내현)가 상이한 선택을 하였다. 그리고 이때의 상이한 경험은 기원전 75년 ‘이맥소침(夷貊所侵)’의 결과로 낙랑군의 동부도위가 설치되면서 부조현과 불내현이 함께 영동 7현에 소속되는 과정에서의 대응에서도 차이를 보이게 된다.<br/> 한편 기원후 2∼3세기에는 후한의 대외정책 변화와 고구려의 성장이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옥저와 예의 대응이 더욱 분화되었다. 옥저는 군현과 고구려 사이에서 이중적 정체성을 활용하며 균형을 도모한 반면, 예는 군현 질서와의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고구려와의 친연성을 표방하여 생존을 모색하였다. 결론적으로 옥저와 예는 단순한 피지배 세력이 아니라 각자의 상황에서 ‘안보 극대화’를 지향하며 편승과 균형유지 전략을 병행하였음을 확인하였다.
Authors
- Junsung Lee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Sahak Yonku The Review of Korean History
- Published
- 2025-09-30
- DOI
- https://doi.org/10.31218/trkh.2025.9.159.5
- Primary Topic
- Japanese History and Culture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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