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apanese Ministry of Imna(任那日本府) & Studies on Japanese Ancient History - Through the discussion of Hiroshi Ikeuchi(池內宏)
식민주의 역사학이 주요한 논의 중 하나인, ‘임나일본부’ 바로 고대 일본의 남선경영론은 침략의 미화를 위한 역사 왜곡, 사료에 대한 자의적 해석의 대표적 사례로써, 당시 일본인 역사가들은 이를 역사적 사실로 당연시했다. 그렇다면 과거 일본인 역사가들은 남선경영론에 대해 모두 동일한 주장을 했던 것일까.<br/> 이 논문은 1947년에 발간된 이케우치 히로시의 『日本上代史の一硏究』를 매개로 이 질문에 답한 것이다. 서명에서 드러나듯이 일본고대사 해명을 목적으로 한 이케우치는 남선경영을 20세기 이래 일본 학계에서 벌어진 야마타이 위치에 대한 논쟁과의 관련 속에서 고찰했다. 그런데 이는 1945년 이전 한국고대사를 연구했던 일본의 주요한 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3세기 위의 사신이 온 야마타이의 위치를 어디로 비정하는가는 야마토 조정의 남선경영의 전제가 되는 일본 내 규슈까지 장악한 통일적인 권력체의 등장 시점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였기 때문이다. 1945년 이전 이나바, 스에마쓰 등은 야마타이가 야마토에 있었다며, 야마토에서 규슈까지 장악한 권력체의 등장 시점을 후한대로 상승시켰으며, 이에 따라 남선경영 역시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초에 시작된다고 보았다. 반면 이마니시, 쓰다는 야마토 조정의 신라정벌과 같은 사건은 4세기 중후반은 되어야 가능했고, 그 직전까지 일본은 지방 할거의 시대로 보았는데, 특히 쓰다는 야마타이는 규슈에 있었다며 일본에서 통일적 정치체는 4세기 전반에 등장했고, 남선경영은 4세기 중후반에 시작된 것으로 보았다.<br/> 1947년 이케우치는 자신은 야마타이 야마토론을 지지한다며, 야마토에서 규슈까지 장악한 권력체의 등장 시점을 야마토론자로서 최하한인 3세기 전반에 설정했다. 그런데 남선경영의 시점에 대해서는 규슈론자들과 같이 4세기 중후반의 일로 보았다. 이렇게 야마토론과 규슈론을 섞어 버린듯한 논의를 전개함에 따라 3세기 전반에서 4세기 중후반까지 150여 년의 기간의 실재와 고대 해외 활동을 벌인 주체에 관해서는 설명을 회피한 다거나 애매하게 서술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이렇게 고대 한국·중국 등 해외와 교통한 일본인을 모호하게 서술하는 태도는 1945년 이후 또 한 명의 야마토론자였던 스에마쓰에게도 나타난다. 이는 일본서기에 대한 사료비판의 결과 도출된 4세기 중후반의 신라정벌이란 결론을 부정할 수 없는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br/> 한편 20세기 전반 전개된 남선경영론이 일본에서 통일적인 권력의 출현이라는 일본사의 해명 과정에서 벌어진 야마타이 논쟁과 관련하여 차이를 보였던 것은 식민주의 역사학이 통치 이데올로기였을 뿐만이 아니라 근대 역사학으로서의 속성 역시 다분했음을 말해 준다.
Authors
- Soon-Jong Jeong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Sahak Yonku The Review of Korean History
- Published
- 2025-09-30
- DOI
- https://doi.org/10.31218/trkh.2025.9.159.115
- Primary Topic
- Japanese History and Culture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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