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aracteristics of 「Yisageum Ilseong’s Royal Edict」 and the formation process of Sumptuary law awareness in Silla
본 논문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소재 「逸聖尼師今 下令」의 성격과 형성과정을 고찰함으로써, 신라 사치 금령의 역사적 전개 속에서 「일성이사금 하령」의 존재의미를 규명하려 한 것이다.<br/> 사료상 「일성이사금 하령」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전자가 農本과 勸農에 대한 강조라면, 후자는 민간의 귀금속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일성이사금 하령」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前漢 景帝 後 3년(기원전 141)의 사치 규제와 매우 유사하다. 그렇다면 2세기 전반 신라 사회에 「일성이사금 하령」이 실재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비교적 가까운 시기인 後漢의 사치 규제보다도 훨씬 앞 시기의 사례가 선택적으로 활용되었다면, 이는 중국 전적이 수입된 이후의 사료적 보입 내지 粉飾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br/> 뿐만 아니라 「일성이사금 하령」과 전한 경제의 사치 규제 사이에는 서사적 측면에서 冬雷라는 교집합이 확인된다. 「일성이사금 하령」은 災異에 대한 신라 조정의 대응이라는 서사에서 일성이사금 11년 봄 2월 항목에 배치되었던 것이다.<br/> 「일성이사금 하령」의 보입·분식은 기본적으로 天人感應論과 五行, 특히 재이와 漢代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한 여건이 충분히 성숙한 시점으로는 8세기 전반이 주목되는데, 이 시기는 개원 2년(714) 唐 玄宗이 전한 경제의 조칙을 참고하여 사치 규제를 반포한 시점과도 교차된다. 더불어 이 무렵 신라에서는 上代에 대한 활발한 지적 탐구 분위기와 맞물려 『國史』의 改修가 진행되고 있었다. 「일성이사금 하령」의 보입 및 분식은 바로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고려되었을 것이다.<br/> 결국 「일성이사금 하령」은 신라 사회에 실재한 법령으로 볼 수 없다. 대신 이 하령은 中代 신라에 보다 정제된 형태의 천인감응론적 재이론과 그에 기반한 사치 금령 인식의 존재를 시사하는 사례로 음미되어야 한다. 「일성이사금 하령」은 신라 사치 금령 인식의 성립 지표로서 존재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단 「일성이사금 하령」은 사서의 개수 과정에서 등장한 관념의 소산일지언정, 사치 금령에 대한 인식의 발로 그 자체는 하대 초 「애장왕 교서」와 「흥덕왕 교서」 등장의 전야가 되었다.
Authors
- T.-P. Ko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Journal of Korean Ancient History
- Published
- 2025-09-30
- DOI
- https://doi.org/10.37331/jkah.2025.09.119.77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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