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the Political Implications and Dating of the Compilation of the Mujangsa Stele in Gyeongju
이 글은 경주 무장사지에서 발견한 「무장사비」 비편의 자구를 분석하여 이 비를 조성하고자 했던 이들의 정치적 의도를 읽어내고, 무장사비문의 찬술 시기를 비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근대 사회에서 종교 기념물은 정치 기념물이기도 하다. 특히 무장사비문이 신라의 문자 기록에서 中宮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유일한 사례라는 데 주목하여 이 비가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 메시지를 읽어보았다.<br/> 무장사에서 소성왕(재위 799~800)의 죽음을 애도하며 아미타불상을 만들어 미타전에 봉안하는 불사를 주관한 이는 소성왕의 비인 계화부인이지만, 이 불사를 기념하는 비를 건립하기 위해 비문의 찬술을 명한 이는 애장왕(재위 800~809)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무장사비」의 건립 시기를 애장왕 즉위 초인 800년 혹은 801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애장왕대의 정치 변동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며, 무장사 공간과 무장사비문 사이의 이질성도 외면한 것이다.<br/> 애장왕이 13세에 즉위하여 숙부인 김언승이 섭정하였다. 805년(애장왕 6) 1월 애장왕은 친정을 시작하면서 왕모를 대왕후로, 왕비를 왕후로 封하였다. 이후 그는 국왕 중심의 지배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정책을 펼쳤는데, 「무장사비」의 건립은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애장왕의 명령을 받아 김육진이 찬술한 무장사비문에서는 中宮, 六依, 九府, 繼斷鼇, 運璇璣, 握金鏡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소성왕과 계화부인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는 국왕 자신의 혈통과 계보의 정통성을 내세워 안정적인 왕권을 확보하고자 했던 애장왕의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무장사비문은 애장왕의 친정 시기인 805년(애장왕 6) 정월 이후에 찬술된 것으로 판단된다.
Authors
- Kwang-Youn Park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Journal of Korean Ancient History
- Published
- 2025-09-30
- DOI
- https://doi.org/10.37331/jkah.2025.09.119.261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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