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stablishment of an Independence Movement Base in Southern Manchuria by Literati from the Gang-u Region in the 1910s and Their Journey to Beijing, China : Focusing on Han-gye Yi Seung-hui’s Beijing Travels
본 연구는 1910년대 강우 지역 유림이 남만주에 독립운동기지를 구축하고, 중국으로부터 동삼성한인공교회를 정식 승인을 받고자 북경 유람을 하게 되는 과정과 그 역사적 의의를 규명하였다. 특히 강우 지역 유림이 봉천성 안동현 접리수촌에 한인촌을 건설한 후 만주 일대 강우 지역 유림과 일정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던 유림이 남만주 일대에 한인 자치촌 형태의 새로운 독립운동기지를 마련하고, 중국 공교회와 일정한 연계를 통해 그들의 ‘합법적 보호’ 속에서 독립운동의 토대를 확립해 가는 과정을 분석하였다.<br/> 경술국치 이후 봉선・경봉선 철도 완공과 압록강 철교 개통은 조선과 만주, 중국 본토와 러시아를 연결하는 교통 네트워크 완비됨에 따라 안동(현 단동)을 비롯한 남만주가 새로운 독립운동 거점 지역으로 부상하였다. 이 과정에서 노상익・노상직・안효제 등 강우 지역 유림이 주도적으로 접리수촌 서구에 정착해 독립운동기지를 구축하는 준비작업을 펼쳤다. 1913년 이승희가 합류한 후 동삼성한인공교발기회를 조직하고, 중국 내 한인의 법적 지위 확보, 한인 자치촌 운영 방안 등을 담은 취지서를 작성했다. 이승희는 118일간 북경 유람 과정에서 심양현에 머물면서 접리수촌 인사들과 접촉해 새로운 독립운동기지를 모색하고, 북경에서 중국 공교운동 주요 인사와 한인 지도자들과 교류하면서 동삼성한인공교회 정식 승인을 12일 만에 받아냈으며, 중국 공교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Authors
- Sam-cho Im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Journal of Society for Humanities Studies in East Asia
- Published
- 2025-09-30
- DOI
- https://doi.org/10.52639/jeah.2025.09.72.103
- Primary Topic
- Asian Culture and Media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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