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story of Overcoming Gija Joseon
기자동래, 기자조선 전승은 기자의 실존 연대로부터 무려 1,100년이 지난 뒤에야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전승은 여러 내용으로 전하는데, 서로 간의 모순성 및 내용의 개연성 등에서 사실의 역사로 보기 어렵다. 조선 후기 들어 그 사실성에 의문과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하는데, 첫 번째는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기자수봉설’에 대한 비판이다. 이는 원전에 대한 깊은 탐독과 고증의 학풍 속에서 정황상의 논리를 전개하며 이루어졌다. 기자 관련 전승 및 유적은 중국 본토와 요서·요동 지역에도 있었다. 그에 대한 견문은 기자가 아닌 그의 후손이 오랜 세월에 걸쳐 옮겨왔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기자조선 설은 근대 역사학에 이르러 전면 부정된다. 秦漢 시대 중국 유민의 이주와 낙랑군의 장기존속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망명한 漢人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라는 ‘조작설’을 여러 연구자가 제기하였다. 중국 학계는 여전히 기자조선을 인정하지만, 한국과 일본 학계는 조작된 전승으로 파악하며 그 실체를 부정하는 시각이 다수다. 기자조선이 강고한 사실의 역사로 강조됨은 이데올로기와 결부된 전통시대 역사학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이다. 그에 점차 의문을 제기하고 전면 부정하는 시각의 전환은 전통의 붕괴와 근대정신의 발현이라 할만하다.
Authors
- Jin Kook Jeon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Cheonggyeo History
- Published
- 2025-08-31
- DOI
- https://doi.org/10.33835/cghs.30.6
- Primary Topic
- Asian Culture and Media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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