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igins and Transformation of the Byeolseaksu(別細樂手) and Byeolseakgun(別細樂軍): From the Hunryeondogam Seaksu to the Muwiso Byeolseakgun

조선 후기 군영에는 신호 및 연주 기능을 담당하는 악대를 편제하였으며, 이는 크게 취고수(吹鼓手)와 세악수(細樂手)로 구성되었다. 훈련도감에는 ‘별세악수(別細樂手)’ 또는 ‘별세악군(別細樂軍)’이라는 독자적 명칭의 악대가 존재하였는데, 그 성격이 명확하지 않아 선행연구에서는 별세악수의 정의에 대해 이견을 보였다. 본 연구에서는 별세악수(별세악군) 관련 사료를 검토하여 그 성립 시기와 성격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이후 변천 과정까지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오해를 바로잡고자 하였다.별세악수라는 용어는 1719년(숙종 45) 『훈국등록(訓局謄錄)』에서 처음 확인되며,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의 내용을 통해 해당 집단의 성립 시기를 1704년 이전으로 소급할 수 있었다. 18세기 별세악수는 훈련도감의 세악수로서 정식 편제되었고, 정원은 25명이었다. 1745년(영조 10)에는 일시적으로 감축되기도 하였으나, 정조대 이후 삼현육각 구성의 4패에 패두 1명이 추가된 형태의 25명 체제로 복구되어 고종대까지 유지되었다.19세기 후반 고종의 군제 개혁 과정에서 훈련도감이 무위소(武衛所)로 흡수 및 통합되면서 별세악수의 의미에도 변화가 생겼다. 무위소의 군안을 확인한 결과, 당시 무위소의 별세악군 20명 중 훈련도감 출신자는 전무하였다. 이는 별세악군의 개념이 ‘무위소의 세악수’로 확장되었음을 시사한다. 별세악수의 의미 변화는 훈련도감과 무위소의 연관성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결론적으로 별세악수는 18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훈련도감의 세악수’로 한정되었으나, 이후 군제 개편에 따라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변화하였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Cheonggyeo History
Published
2025-08-31
DOI
https://doi.org/10.33835/cghs.30.3
Primary Topic
Japanese History and Culture
Typ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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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igins and Transformation of the Byeolseaksu(別細樂手) and Byeolseakgun(別細樂軍): From the Hunryeondogam Seaksu to the Muwiso Byeolseakgun

Ra-hee Park
Cheonggyeo History
Japanese History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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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igins and Transformation of the Byeolseaksu(別細樂手) and Byeolseakgun(別細樂軍): From the Hunryeondogam Seaksu to the Muwiso Byeolseakgun

Ra-hee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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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조선 후기 군영에는 신호 및 연주 기능을 담당하는 악대를 편제하였으며, 이는 크게 취고수(吹鼓手)와 세악수(細樂手)로 구성되었다. 훈련도감에는 ‘별세악수(別細樂手)’ 또는 ‘별세악군(別細樂軍)’이라는 독자적 명칭의 악대가 존재하였는데, 그 성격이 명확하지 않아 선행연구에서는 별세악수의 정의에 대해 이견을 보였다. 본 연구에서는 별세악수(별세악군) 관련 사료를 검토하여 그 성립 시기와 성격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이후 변천 과정까지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오해를 바로잡고자 하였다.별세악수라는 용어는 1719년(숙종 45) 『훈국등록(訓局謄錄)』에서 처음 확인되며,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의 내용을 통해 해당 집단의 성립 시기를 1704년 이전으로 소급할 수 있었다. 18세기 별세악수는 훈련도감의 세악수로서 정식 편제되었고, 정원은 25명이었다. 1745년(영조 10)에는 일시적으로 감축되기도 하였으나, 정조대 이후 삼현육각 구성의 4패에 패두 1명이 추가된 형태의 25명 체제로 복구되어 고종대까지 유지되었다.19세기 후반 고종의 군제 개혁 과정에서 훈련도감이 무위소(武衛所)로 흡수 및 통합되면서 별세악수의 의미에도 변화가 생겼다. 무위소의 군안을 확인한 결과, 당시 무위소의 별세악군 20명 중 훈련도감 출신자는 전무하였다. 이는 별세악군의 개념이 ‘무위소의 세악수’로 확장되었음을 시사한다. 별세악수의 의미 변화는 훈련도감과 무위소의 연관성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결론적으로 별세악수는 18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훈련도감의 세악수’로 한정되었으나, 이후 군제 개편에 따라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변화하였다.

Cheonggyeo HistoryVol.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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