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ccession to the throne of In-gyeom Lineage during the reign of King Heondeok and King Heungdeok of Silla
하대신라 초기 왕위를 독점한 인겸계는 애장왕대 친정파와 섭정파로 분열되어 자신의 세력 확장을 위해 각각 다른 진골가문들과 정치적 제휴를 모색하였다. 예영계의 김헌정 가문은 섭정 세력과 정치적 이해를 같이하여 헌덕왕의 찬탈에 협조한 반면, 김균정 가문은 친정 세력과 연결되었다.<br/> 헌덕왕의 찬탈 후 인겸계 형제들은 왕위와 요직을 독점하고 정국을 주도하였다. 822년 헌덕왕은 무사자(無嗣子)라고 공표하고 동모제인 김수종을 다음 왕위계승자의 지위인 부군으로 지명하자 김헌창은 이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켜 신라의 과반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왕경의 진골 귀족들은 인겸계 왕실에 동조하며 진압군에 가담하여 반란을 진압하였다.<br/> 형의 왕위를 이어받은 흥덕왕도 무적사(無嫡嗣)라고 선언하고 자신의 후계자로 동모제인 김충공을 태자로 삼아 정국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김충공의 정치적 부재가 시작되는 834년(흥덕왕 9) 이후 흥덕왕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김우징을 재차 시중에 임명하고 대열, 관사, 순행 등을 강행하였으며, 풍속에 대한 교서를 발표하여 인겸계 왕실의 정국 주도와 정통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인겸계 왕실의 유일한 적자인 김명을 19세의 나이에 시중으로 임명하고 정치적 위상을 강화시켜 주었다.<br/> 선강태자(김충공)의 사후 흥덕왕의 태자 지명이나 유조가 없을지라도 흥덕왕의 후계 왕위는 국인 추대에 의해 인겸계 왕실의 적자인 김명으로 내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흥덕왕 사후 상대등 김균정은 자신에게 불리하게 진행될 이러한 국인 추대 절차에 따르지 않고 앞서 선덕왕 사후 상대등 김경신처럼 병력을 이끌고 왕궁을 쳐들어 왔다. 고립된 인겸계 왕실의 세력 열세를 절감했지만 김명은 김주원처럼 물러나지 않고 김제륭과 연합하여 김균정을 막았고, 국인 추대에서 김제륭을 왕으로 추대했다.
Authors
- Young-Oh Kwon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History & the Boundaries
- Published
- 2025-08-31
- DOI
- https://doi.org/10.52271/pkhs.2025.08.132.153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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