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f Political Use of The Book of Changes(Zhouyi) in Royal Lectures(Gyeong-yeon) held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gjong

이 논문은 조선 초기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69~1494)대에 『주역』 경전을 대상으로 진행된 경연(經筵)의 양상과 논의내용을 검토하여 군신간의 정치적 활용의 양상을 파악한 글이다.<br/> 조선은 초기부터 경연이 제도화되어, 반의무적으로 시행되었다. 태조 때 이미 경연청이 설치되었고, 성종 때는 재위 25년 동안 매일 거의 세 차례 경연을 열어 여러 정치 문제를 협의하였다. 성종대는 경연이 정치 논의의 주무대가 되기도 하였다.<br/> 성종은 재위 25년간 수많은 경전을 강론하였고, 경연장을 집무실처럼 활용했다. 본 논문에서는 경연에서 한번이라도 언급된 『주역』 경문을 대상으로 그 언급 경위와 전후 사정을 검토하여 시무(時務)에 『주역』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보일 것이다. 경연에서 『주역』이 언급된 사례는 모두 20차례이다.<br/> 성종조의 경연의 특징과 『주역』 경문의 정치적 활용이라는 차원에서 성종조 『주역』 경연자료를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나타난다.<br/> 첫째는 경연 현장의 사관의 기록에서부터 그런 현상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연산조 때 『성종실록』의 편찬관들은 그날그날 강론 종결 뒤의 시무 토론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성종은 매일 여러 차례의 경연을 열었기 때문에 세종조보다도 경연관들의 수가 많아졌고, 참석인원수와 담당을 명확히 구분하여 매우 체계적으로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셋째는 성종대 경연자료는 대부분 강론 종결 후의 시무 토론인데, 모든 진언자들의 목소리를 대화체로 기록했다는 점이다. 넷째는 기록된 양상으로 추정해 볼 때 사서오경과 기본 역사서류는 반복 진강되었는데, 선별적인 학습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다섯째는 기타 비교적 다양한 서적을 진강하였는데, 필요한 부분만 선별하여 진강했다는 점이다. 여섯째는 성종이 13세에 즉위하여 성인이 되는 20세 전의 대략 7년간은 지사(知事)와 동지사(同知事) 등의 정2품관이 진강을 전담했지만, 성종 8년 이극배의 건의 이후 당하관들이 진강을 전담했다는 점이다. 일곱째는 『실록』에 진강 내용이 1~2회 정도 기록된 책이나, 진강 내용은 없고 다만 교재명만 1~2회 기록된 경우들은 대부분 범례(範例) 형태의 진강이었다는 점이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The Journal of History and Practical Thought Studies
Published
2025-08-31
DOI
https://doi.org/10.31335/hpts.2025.08.87.49
Primary Topic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Type
article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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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 Study of Political Use of The Book of Changes(Zhouyi) in Royal Lectures(Gyeong-yeon) held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gjong

Byong Kee Hwang
The Journal of History and Practical Thought Studies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article

A Study of Political Use of The Book of Changes(Zhouyi) in Royal Lectures(Gyeong-yeon) held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gjong

Byong Kee 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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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논문은 조선 초기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69~1494)대에 『주역』 경전을 대상으로 진행된 경연(經筵)의 양상과 논의내용을 검토하여 군신간의 정치적 활용의 양상을 파악한 글이다.<br/> 조선은 초기부터 경연이 제도화되어, 반의무적으로 시행되었다. 태조 때 이미 경연청이 설치되었고, 성종 때는 재위 25년 동안 매일 거의 세 차례 경연을 열어 여러 정치 문제를 협의하였다. 성종대는 경연이 정치 논의의 주무대가 되기도 하였다.<br/> 성종은 재위 25년간 수많은 경전을 강론하였고, 경연장을 집무실처럼 활용했다. 본 논문에서는 경연에서 한번이라도 언급된 『주역』 경문을 대상으로 그 언급 경위와 전후 사정을 검토하여 시무(時務)에 『주역』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보일 것이다. 경연에서 『주역』이 언급된 사례는 모두 20차례이다.<br/> 성종조의 경연의 특징과 『주역』 경문의 정치적 활용이라는 차원에서 성종조 『주역』 경연자료를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나타난다.<br/> 첫째는 경연 현장의 사관의 기록에서부터 그런 현상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연산조 때 『성종실록』의 편찬관들은 그날그날 강론 종결 뒤의 시무 토론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성종은 매일 여러 차례의 경연을 열었기 때문에 세종조보다도 경연관들의 수가 많아졌고, 참석인원수와 담당을 명확히 구분하여 매우 체계적으로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셋째는 성종대 경연자료는 대부분 강론 종결 후의 시무 토론인데, 모든 진언자들의 목소리를 대화체로 기록했다는 점이다. 넷째는 기록된 양상으로 추정해 볼 때 사서오경과 기본 역사서류는 반복 진강되었는데, 선별적인 학습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다섯째는 기타 비교적 다양한 서적을 진강하였는데, 필요한 부분만 선별하여 진강했다는 점이다. 여섯째는 성종이 13세에 즉위하여 성인이 되는 20세 전의 대략 7년간은 지사(知事)와 동지사(同知事) 등의 정2품관이 진강을 전담했지만, 성종 8년 이극배의 건의 이후 당하관들이 진강을 전담했다는 점이다. 일곱째는 『실록』에 진강 내용이 1~2회 정도 기록된 책이나, 진강 내용은 없고 다만 교재명만 1~2회 기록된 경우들은 대부분 범례(範例) 형태의 진강이었다는 점이다.

The Journal of History and Practical Thought StudiesVol.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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