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peration of Royal Lectures and the Ideal Image of a Confucian Monarch in the 15th Century
이 논문은 15세기 조선의 국왕과 관리들이 경연을 통해 유교 이념을 정비하고 유학적 군주상을 정립해 가는 과정을 검토하였다.<br/> 15세기의 국왕 가운데 경연을 충실하게 운영한 사람은 세종과 성종이었다. 이들은 경연에서 학습한 과목이 다양하고, 경연 횟수가 많았으며, 토론 내용도 심도가 깊었다. 경연의 중요 과목은 경서였고, 특히 『상서』, 『대학』, 『논어』의 비중이 높았다. 또한 중국의 역사서로는 『자치통감강목』과 『통감속편』을 많이 읽었고, 세종과 성종은 『고려사』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하였다.<br/> 15세기의 국왕과 경연관은 경연에 참석하는 관리는 모두 간관(諫官)이라 생각하였다. 이에 따라 경연은 경서나 역사서를 읽고 이해하는 동시에 당대 현안을 활발하게 토론하는 자리가 되었다. 이들은 유교 이념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특이한 자연현상은 하늘과 사람이 감응한 결과라 생각하고. 재난이 발생하면 군주의 근신을 강조하였다. 국왕과 경연관은 유교식 의례를 정비하고 음악을 바로잡는 방안을 논의하였다. 또한 불교의 가르침은 정도(正道)가 아니고, 국역을 부담하지 않은 승려가 늘어나며, 화려한 행사와 사찰 건축으로 막대한 비용이 사용되는 것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불교를 믿는 왕실 가족의 반대로 불교의 폐단을 완전히 근절하지는 못했다.<br/> 경연에서는 국왕의 정심(正心)을 강조하였다. 국왕이 바른 마음을 가져야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고 적절한 인재를 관리로 발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연관은 국왕에게 언로를 열어 간언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였고, 역대 군주와 신하들의 행적을 평가하며 모범 사례를 찾았다. 국왕이 인재를 관리로 선발한 후에는 휼민(恤民)이 강조되었다. 국왕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백성의 생활을 살피고 어려움을 구제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백성을 다스리는 지방관의 활동을 꾸준히 감찰하였다. 또한 재난이 발생하면 국왕은 즉시 백성들을 구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했으며, 경연에서 다양한 휼민 방안을 토론하였다.<br/> 15세기 경연에서는 국왕과 경연관의 활발한 토론을 통해 국왕의 정심과 휼민을 중시하는 유학적 군주상이 정립되었다.
Authors
- Moon Sik Kim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Journal of History and Practical Thought Studies
- Published
- 2025-08-31
- DOI
- https://doi.org/10.31335/hpts.2025.08.87.135
- Primary Topic
- Chinese history and philosophy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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