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strife of princes during King Jeongjong’s reign and the enthronement process of King Taejong - Centered on the roles of the Retired King(太祖 King Taejo) and the King(定宗 King Jeongjong) -

본고는 태종을 중심으로 정리된 2차 왕자의 난으로부터 즉위에 이르는 과정을 정종과 태조의 역할에 주목하여 살펴본 것이다.<br/> 2차 왕자의 난은 개경 환도 후 개편된 군사 운영체계를 점검하기 위해 군대가 개경 인근에 집결한 것을 계기로 발발하였다. 군대를 먼저 움직인 것은 방원으로서, 자신의 군대를 미리 성내에 배치한 다음 동대문을 닫아 방간의 군대가 진입하는 것을 막아 승리하였다. 박포의 꾀임에 빠진 방간의 거병이라는 서사는 후계자를 노린 방간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정종과 방원의 갈등을 은폐하려는 것이다. 정종은 즉위 후 후궁 류씨 소생의 長子를 元子로 삼았는데, 2차 왕자의 난 후에는 스스로 불노의 혈통을 부정함으로써 원자 책봉을 무효화하였다. 정변 후 정종은 방원의 군사권을 인정하고 세자를 삼았지만 선위 직전까지 수창궁에 머물며 국정운영과 경연을 통해 국왕의 역할을 유지하였다.<br/> 정종은 변란이 발발한 지 10여 개월 후에야 방원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는데, 여기에는 태조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태조는 변란 후 방원의 왕위 계승을 공인하였고, 방원 역시 태조를 ‘태상왕’으로 추봉함으로써 서로의 권위를 확장하였다. 이어 태조는 한양으로 떠나서 정종의 연이은 귀경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방원이 즉위하자 당일 개경으로 돌아와 지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하였다. 이는 우회적으로 정종의 선위를 압박함으로써 태종의 즉위를 추동한 것이었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The Journal of History and Practical Thought Studies
Published
2025-08-31
DOI
https://doi.org/10.31335/hpts.2025.08.87.227
Primary Topic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Typ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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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ond strife of princes during King Jeongjong’s reign and the enthronement process of King Taejong - Centered on the roles of the Retired King(太祖 King Taejo) and the King(定宗 King Jeongjong) -

Jeong Yoon
The Journal of History and Practical Thought Studies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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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ond strife of princes during King Jeongjong’s reign and the enthronement process of King Taejong - Centered on the roles of the Retired King(太祖 King Taejo) and the King(定宗 King Jeongjong) -

Jeong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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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고는 태종을 중심으로 정리된 2차 왕자의 난으로부터 즉위에 이르는 과정을 정종과 태조의 역할에 주목하여 살펴본 것이다.<br/> 2차 왕자의 난은 개경 환도 후 개편된 군사 운영체계를 점검하기 위해 군대가 개경 인근에 집결한 것을 계기로 발발하였다. 군대를 먼저 움직인 것은 방원으로서, 자신의 군대를 미리 성내에 배치한 다음 동대문을 닫아 방간의 군대가 진입하는 것을 막아 승리하였다. 박포의 꾀임에 빠진 방간의 거병이라는 서사는 후계자를 노린 방간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정종과 방원의 갈등을 은폐하려는 것이다. 정종은 즉위 후 후궁 류씨 소생의 長子를 元子로 삼았는데, 2차 왕자의 난 후에는 스스로 불노의 혈통을 부정함으로써 원자 책봉을 무효화하였다. 정변 후 정종은 방원의 군사권을 인정하고 세자를 삼았지만 선위 직전까지 수창궁에 머물며 국정운영과 경연을 통해 국왕의 역할을 유지하였다.<br/> 정종은 변란이 발발한 지 10여 개월 후에야 방원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는데, 여기에는 태조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태조는 변란 후 방원의 왕위 계승을 공인하였고, 방원 역시 태조를 ‘태상왕’으로 추봉함으로써 서로의 권위를 확장하였다. 이어 태조는 한양으로 떠나서 정종의 연이은 귀경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방원이 즉위하자 당일 개경으로 돌아와 지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하였다. 이는 우회적으로 정종의 선위를 압박함으로써 태종의 즉위를 추동한 것이었다.

The Journal of History and Practical Thought StudiesVol.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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