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onjae Song Byeong-seon’s Retirement and Management of Seobyeokjeong Pavilion in Mugyegugok Valley
근대 이행기를 활동기로 삼았던 연재 송병선은 심석재 송병순과 함께 연재학파를 창시·공유한 애국지사다. 그런데 송병선이 무주 덕유산의 횡천 일대에 설정한 무계구곡과 서벽정을 둘러싼 연구는 그간 충분히 이뤄지질 못했다. 이에 이 사안의 전제에 해당하는 내용, 곧 송병선이 고종이 취한 의제변개령에 크게 실망한 끝에, “경전을 안고 심산에 드는” 자정노선에 착수하게 된 경위를 우선적으로 규명하였다. 그 과정에서 송시열의 춘추의리사상에 기반한 보수적 색채의 일단을 엿보게 되었다.1866년에 처음으로 무주의 적성산을 찾았던 송병선이 덕유산의 횡천 일대를 유람한 것은, 1869년(34세)의 일이다. 이때 송병선은 차후 무계구곡으로 명명한 횡천의 심산유곡이 은둔처로 적격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특히 송병선은 학소대와 도화담·대은굴·일사대와 같은 명소가 결집된 제3곡을 심히 애호한 나머지, 18866년(51세) 6월에 서벽정을 건립하게 된다. 그런데 서벽정은 6년 만에 불의의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고, 이에 송병선은 지인의 도움으로 1890년 봄에 터를 옮겨 다시 건물을 중창하게 된다.차후 송병선은 서벽정에서 저술과 강학·창작 활동 및 소요유와 여기 생활을 이어나갔고, 이는 회덕의 “석촌정사에서 순도(殉道)”를 단행한 70세 이전까지 지속되었다. 특히 송병선은 서벽정에서 유학적 진리의 세계를 부지하기 위한 목적하에, 매년 춘추 강회를 개최한 정황이 주목된다. 송병선ㆍ병순 형제의 공동 문인록인 『계산연원록』에서 무주 출신의 문하생들이 두 번째로 많은 수치를 차지한 이면에는, 서벽정 강회가 호남과 지역 사회의 향풍 진작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을 방증해 준다. 한편 『주계읍지』를 발간한 군수 조병유가 송병선의 서벽정 강회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Authors
- Jong-su Kim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Journal of Shimhoon
- Published
- 2025-08-31
- DOI
- https://doi.org/10.61392/shun.2025.08.31.02
- Primary Topic
- Urban and spatial planning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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