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ason why the identity of Korean Buddhist practice is found in Jinul's thoughts : Focusing on the sudden awakening-gradual cultivation(頓悟漸修) of 「Susimgyeol(修心訣)」
현대 수행이 행복을 위한 행위라고 여겨지는 흐름에 반하여, 고대 한국불교에서는 청정 및 깨달음의 원형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현재 우리는 다양한 수행의 방법과 형태를 대면한다. 현대 한국불교는 수행의 또 다른 대중화를 경험한다. 과학과 불교를 연결하면서 전통 수행과는 결이 다른 만족감과 정당성을 찾으려 한다. 한국불교의 진정한 수행은 어떤 것일까? 현대인들의 마음에 위안과 행복을 주고 흡족한 마음을 갖게 한다면, 그 목적을 성취한 것인가? 수행이 곧 행복이라는 등식이 맞는 것인가?고대 한국불교의 수행 정신에서는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행복은 거론하지 않았다. 수행의 경계 속에서 행복이 궁극의 목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신비적인 수행 정신을 과학과 물질, 그리고 시각적인 체계에서 구체화하려는 현대인의 내면에 조심스럽게 제동을 걸어보고자 한다. 이러한 이유는 앞으로 한국불교 수행의 정체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또한 원점으로 돌아가, 고원한 한국불교의 수행 정신이 어떠했는가를 지눌의 『수심결(修心訣)』에서 찾아 한국불교의 수행 정체성을 거론하고자 한다. 지눌의 『수심결』에서 언급한 돈오점수의 정신이 원형 그대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렵다는 이유로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우리의 생각에 맞춰서 재단한 경향이 있다. 행복한 수행을 위해 우리의 이해와 생각에 맞게 스스로 원형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에게 되묻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지눌의 『수심결』에서 거론하는 돈오점수의 고원성에 집중 하고자 한다. 돈오점수는 겸손하고 소탈한 구도자의 행위이다. 본 논의는 지눌(知訥)의 『수심결』의 돈오점수를 한국불교 수행 정신의 초석으로 놓고, 수행의 원칙과 토대를 다시 세우기 위해, 세밀하게 지눌의 의미를 되짚고자 한다.지눌이 말한 돈오와 점수는 간단하다. 돈오란 자기의 본성을 보는 것으로, 이 성품에는 본래 번뇌가 없다. 이 성품에는 무루(無漏)의 지혜가 본래 구족해 있어서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다.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배에서 나와 인간의 형상을 가진 그 모습 자체와 같다. 형상을 가진 진리라는 깨달음이 이미 존재하듯이, 돈오는 깨침의 첫 과정처럼 잉태된 아이의 출산과도 유사하다. 점수란 비록 본래의 성품이 부처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 온 습기(習氣)는 갑자기 제거하기 어렵기에 행한 것이다. 깨달음에 의지해 수행하고 점점 익혀서 공(功)을 이룬다. 또 오랫동안 성인의 자질을 길러나가야 하는 것과 같다. 지눌의 ‘돈오점수의 체계’는 ‘방편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기에 한국불교 수행의 정체성을 여기에서 찾고자 한다.
Authors
- Won Hae-Young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Korea Journal of Buddhist Professors
- Published
- 2025-08-31
- DOI
- https://doi.org/10.34281/kabp.31.2.8
- Primary Topic
- Religious Studies and Spiritual Practic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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