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tion of Joseon Gwanyo and characteristics of inscription pottery from 1466 to the late 15th century
조선시대 도자사에서 가장 큰 변화는 왕실에서 필요로 하는 그릇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1466년에 경기도 광주에 ‘관영자기제작소’인 관요를 설치한 점이다.관요가 처음 위치한 곳은 우산리 4호 가마터 일원으로, 안맹담(1415~62)의 묘지편과 태항아리의 형태와 받침법의 변화를 통해 1466부터 1482년까지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목현동 1호는 연산군의 태실을 통해 1472년부터 1476년까지, 관음리 20호(남쪽)은 명문자기를 통해 1480년대 전반부터 1495년 전후한 시기까지 운영된 것을 확인하였다.15세기 말에 운영된 관요는 1493년(성종 24)에 사옹원의 시장으로 언급된 ‘羔岾’·‘加仍邑山’·‘木刈山’·‘余末洞’·‘無涯山’·‘都麻峴’으로 알 수 있는데, 목예산은 군월산, 여말동은 열미리 5호 일원, 무애산은 무갑산과 곤지암천 일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새롭게 밝혔다.경기도 광주에 관요가 설치되면서 그릇의 내·외면이나 굽 안바닥에 인각·음각·상감기법, 또는 철화안료나 굽 안바닥의 유면을 긁어서 명문을 쓴 자기가 제작되기 시작하는데, 시기에 따라 명문과 시문 방법이 변한다. 특히 ‘司’·‘內’·‘內廚’명 백자는 관요가 성립된 이후에 제작되었으며, ‘內用’명은 ‘內廚’명이 변화된 것임을 밝혔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Authors
- K Kim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Jungbu Archaeological Society
- Published
- 2025-08-31
- DOI
- https://doi.org/10.46760/jbgogo.2025.24.2.125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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