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aning of the Construction of Gyeongbokgung Palace Garden Outside Sinmu-Gate – The Experience of Changdeokgung Palace and Heungseon Daewongun's Architectural Intention –
868년 중건된 경복궁의 후원은 신무문 밖 넓은 부지에 지어졌지만 경무대라는 과거시험장과 그 주변의 융문당과 융무당 두 건물만이 눈에 띄는 정도로 시설은 의외로 작았다. 조선 전기 경복궁 후원은 신무문 안쪽에 마련되었으며 세종에 의해 원림으로서의 형태를 갖추었다. 경복궁을 유교의례에 걸맞은 궁궐로 탈바꿈시킨 세종은 후원 조성에 대해서도 동일한 자세를 보인 것이다. 전기 경복궁 후원은 유교 의례를 실현하는 장소로서 의미가 컸다. 세조는 창덕궁으로 이어한 뒤 경복궁 후원을 모범으로 삼아 창덕궁 후원을 갖추어 나갔다. 17세기 이후 춘당대가 과거시험장으로 쓰이면서 창덕궁 후원은 정치 공간으로 바뀌었다.<br/>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신무문 밖 후원은 철저한 정치 공간의 특성을 살려 지어졌다. 경복궁 중건을 도맡아했던 흥선대원군은 조선 초기 궁궐 앞에서 문무 관청을 마주하던 모습을 되살려 광화문 앞에 의정부와 삼군부를 복설하고 경복궁 근정전 앞에는 융문루와 융무루, 그리고 후원에는 융문당과 융무당을 두어 육조거리에서 경복궁, 후원에 문무 상대배치를 구현하였다. 이러한 문무 상대배치 채택은 조선 초기 정치 이념을 재현하려는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구상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Authors
- Kyung-Mee Lee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Journal of Seoul studies
- Published
- 2025-08-31
- DOI
- https://doi.org/10.17647/jss.2025.08.100.01
- Primary Topic
- Urban and spatial planning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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