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Dongnyeongro of the Yuan and Dongnyeongbu of the Northern Yuan
동녕부는 고려 서북면 반란의 결과로 설치되었다. 1270년에 설치된 동녕부는 1275년 동녕로로 승격되었지만, 압록강 하류 도하점 동안의 여러 거점을 파사부에 넘겨주게 되면서 관할 범위는 오히려 감소하였다. 원의 이 조치에는 요동에서 동방왕가 세력과의 갈등이 지속되던 상황에서 압록강 하류의 도하점을 좀 더 확실하게 중앙정권의 관할 하에 두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동녕부 반란 세력의 대표자 격이었던 최탄은 고려의 영역을 침탈하려 하였는데, 이는 북방에서 축소된 영역을 고려의 영역으로 벌충하려 하는 의도였다고 판단된다.이후 원이 동방왕가의 반란을 제압하고 여원관계가 안정에 접어들면서 1290년 고려의 서북면 영역은 고려로 환부되고, 동녕로는 요양으로 옮겨 재설치되었다. 이는 이후 사실상 형해화되었으나 그 체계는 남아 있었기에, 1364년 최유가 덕흥군을 옹립하기 위해 고려로 침입했을 때 박바이에타이가 동녕로 만호로 임명되어 이에 참여하기도 하였다.그리고 동녕로의 이름이 사라진 뒤 얼마 되지 않아 요동에서는 동녕부라는 이름이 다시 한 번 나타난다. 이는 공민왕에게 숙청당한 기철의 아들기사인테무르의 세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고려가 기사인테무르를 격파한 전후의 상황으로 볼 때 14세기 요동 동녕부의 영역으로 거론되는 요-심 지역에는 북원의 분성과 분원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동 동녕부의 두 거점으로 지목되는 것은 요양성과 우라산성이었는데 이 중 요양성 주변에는 분성, 우라산성 주변에는 분원의 영역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14세기 요동의 동녕부와 관련된 이러한 정황을 감안한다면, 고려가 동녕부를 공격하는 것이 북원과의 단절로 이어진다는 『고려사』 기록의 의미는 더욱 명확해지게 된다. 고려가 동녕부를 공격하는 것은 북원이 요동에 설치한 분성 및 분원을 공격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곧 북원이 의도하였던 요동 경영에 대한 전면적 부정으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Authors
- Ki-Seung Oh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A Laboratory of Korean Studies
- Published
- 2025-08-28
- DOI
- https://doi.org/10.25232/ku.2025.64.105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