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fferences in Interpretation by Korean and Japanese Researchers on Fukuzawa Yukichi’s Editorials Related to ‘Joseon’ : Focusing on ‘Jiji Shimpo’
이 논문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의 ‘조선관’을 탐구하기 위한 일환으로, 후쿠자와가 창간한 <시사신보(時事新報)>(1882∼1936)의 사설 중 ‘조선’에 관한 내용을 다룬 일본과 한국 연구자들의 해석을 비교하여 살펴보았다. 일본과 한국에서 후쿠자와의 위상과 평가가 다른 만큼 양국의 연구결과에 대한 비교 분석은, 후쿠자와의 조선에 대한 태도와 관점을 파악하는 데 있어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라 보았다. <시사신보>의 사설 집필을 주도한 건전기(健全期, 1882∼1898) 동안 이 신문에 게재된 ‘조선’ 관련 사설은 약간의 이견은 있으나 총 404건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사설의 약 7.5%에 해당하는 것으로, 후쿠자와가 조선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알게 하는 상징적 수치라 할 수 있다. <시사신보>에서 ‘조선’에 관한 사설을 연구한 일본 학계는 일본의 근대화와 대외 정책의 맥락을 중심으로 ‘조선’ 관련 사설을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며, 그 접근법은 ‘사료 비평 분석’과 ‘필자 식별 기법’의 특성을 보였다. 또한 후쿠자와가 <시사신보>를 통해 조선 및 동아시아에 대한 복잡하고 다층적인 내심을 표출했다고 보았다. 이는 후쿠자와가 조선의 독립을 서구열강으로부터의 일본의 독립과 연결된 문제로 인식함은 물론 일본이 조선보다 우위에 있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조선에 대한 억압적 위치를 긍정하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반면, 한국 학계는 <시사신보>에 게재된 ‘조선’ 관련 사설을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조선의 주권 침해라는 맥락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는 후쿠자와의 사상이 조선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의 문명화론이 결국은 조선의 일본화와 무력 개입의 정당화 논리로 이어졌음에 대한 경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평가는 식민 제국주의라는 틀 내에서 <시사신보> 사설에 대한 실증적 검토 못지않게 시대 맥락적 분석 요인이 중시되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일본 학계는 후쿠자와를 일본 내 문명화와 근대화를 추동한 사상가로 평가하면서, 그의 조선관을 당시 시대적 상황과 일본의 국가적 이익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한국 학자들은 후쿠자와가 <시사신보>를 통해 ‘미개한 나라’ 조선에 대한 일본의 간섭을 정당화했고, 나아가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대한 사상적 기반을 다졌다는 비판적 견해를 취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일본 학계가 후쿠자와의 <시사신보>에 담긴 ‘근대화’ 언설에 주목한 반면, 한국 학계는 <시사신보>에 담긴 ‘제국주의’ 언설에 주목했다 할 수 있다.
Authors
- Jung-Rae Kim
- Nak-Jin Choi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Korean Journal of Communication & Information
- Published
- 2025-08-25
- DOI
- https://doi.org/10.46407/kjci.2025.08.132.82
- Primary Topic
- Translation Studies and Practic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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