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Yeongjo and King Jeongjo’s Perspectives on the “Righteousness and Heroism” of Royal Consort Yeongbin
영빈이씨에 대한 영조와 정조의 평가는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대하는 두 국왕의 정치적 입장과 감정이 공식 기록과 제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영조는 임오화변 당시 영빈의 고변을 ‘종사를 위한 의리’로 칭송하며 적극적인 현창 정책을 펼쳤고, 정조는 생부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개인적 상처와 현양 의지로 인해 영빈의 공적을 의도적으로 희석시켰다. 두 국왕의 대조적인 태도는 왕실 내부의 갈등이 역사 서술과 국가적 기억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뚜렷이 보여준다. 영조는 영빈의 사도처분 요청을 충절로 해석하며 ‘의열’이라는 시호를 통해 그녀의 공적을 공식적으로 기렸다. 또한 그녀의 사당과 묘소를 ‘의열’로 명명하고 어필 현판을 게시하여 국왕의 공식적 지지를 표명했으며 영빈의 공적을 기록한 공식문헌을 편찬해 후대에 전하게 했다. 반면 정조는 즉위 후 생부 사도의 명예회복에 주력하며 영빈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축소했다. 먼저 임오화변 관련 기록을 삭제해 사도의 비행을 은폐했고 영빈의 묘소와 사당 호칭을 ‘선희’로 바꾸어 그녀의 정치적 위상을 감추었다. 또한 사도에게 ‘장헌’이란 시호를 추상하고 ‘수은’으로 불리던 墓廟를 영우원과 경모궁으로 승격시켜 생부의 권위를 높였다. 정조의 이러한 정책은 단순한 호칭 개정을 넘어 영조 시대의 공식적 역사 해석을 재편하는 것이다. 그는 조부 영조가 확립한 ‘의열’의 서사를 약화시키며 자신의 정통성을 생부의 복권에서 찾고자 했다. 영빈에 대한 영조와 정조의 상반한 평가는 역사가 단순한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권력자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재해석되고 재정의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영조는 ‘의리’를 내세워 왕권의 정당성을 강화했고 정조는 ‘효’를 통해 생부의 명예를 회복하며 자신의 통치 기반을 다졌다.
Authors
- D. Kim (ORCID: https://orcid.org/0009-0003-0427-4789)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Han Mun Hak Bo
- Published
- 2025-06-30
- DOI
- https://doi.org/10.35496/han.52.4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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