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the Buddhist Bell at Baekryeonsa Buddhist Temple in Seoul

1569년에 제작된 <서울 백련사 범종>은 현존하는 16세기 범종의 첫 번째 작례이다. 현재 16세기 범종은 국내와 국외를 통틀어 모두 8점의 적은 수량만이 알려져 있다. 이 범종은 15세기 집중 적으로 제작되는 왕실의 후원 범종과 달리 승속의 수많은 인원이 시주자로 참여하여 재정을 지원 한 16세기 민간 후원의 범종이다. 특히, 이 범종에 1569년과 1907년으로 기재된 층위가 서로 다 른 두 개의 주종 기록은 <서울 백련사 범종>에 관한 원래 봉안 사찰을 추론하고, 현재 이안 사찰 의 소장 내력을 증명하는 자료로 중요하다. 1569년 점각 형태로 기재된 주종 기록에 등장하는 시주자 인명과 16세기 전국적으로 진행된 불서 간행에 참여한 시주자 인명을 비교·분석하여 <서울 백련사 범종>에 대한 원래 봉안 사찰을 황해도 서흥군 歸眞寺로 추정하였다. 귀진사는 16세기 중반에 불교미술의 최대 후원자인 文定王 后(1501-1565)와 高僧 虛應普愚(1509-1565)의 보호를 받으며 경제적 지원을 받았던 지방의 왕실 후원 사찰로 고가의 재료인 금속이 필요했던 범종 불사를 진행하기에 적합하였다. 1907년 선각 형태로 기재된 주종 기록은 <서울 백련사 범종>을 잃어버린 후 다시 찾아왔던 당시에 백련사 주지 金西翁이 의도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1907년 10월 15일부터 16일까지 이틀간 발행된 『경성일보』에는 이 범종에 관한 도난과 회수의 전 과정이 상세히 소개되었다. 이 신문 기사 는 이 범종이 늦어도 1907년에는 서울시 서대문구 백련사에 봉안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한편, 이 범종은 도성과 도성 인근에 왕실 후원 사찰들이 19세기 중반부터 말까지 지방에 소재한 범종 을 옮겨오는 사례와 같이 백련사로 이안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서울 백련사 범종>은 한국 범종의 전통적 조형성과 양식을 유지하며 중국 범종의 외래 요소 를 일부분 반영한 작품이다. 단용의 종뉴, 입상연판문대, 범자문, 연곽, 보상화문의 표현은 고려시 대부터 조선 전기 15세기까지 제작된 전통형 범종을 계승한 것이며, 이 범종 이후 16세기 후반에 제작되는 범종들이 한국 범종의 전통 양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영향을 주었다. 반면에 종뉴의 전 체 모양은 구름 위를 날아다니는 운룡문의 도상을 평면에서 입체적으로 변형하여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운룡문 도상은 중국에서 기원하여 성립된 것으로 동아시아에서는 15-16세기에 보 편적으로 유행했던 장엄 요소였음을 확인하였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Dongak Art History
Published
2025-06-30
DOI
https://doi.org/10.17300/dah.2025.37.2
Primary Topic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Type
article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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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Buddhist Bell at Baekryeonsa Buddhist Temple in Seoul

S. Kim
Dongak Art History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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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Buddhist Bell at Baekryeonsa Buddhist Temple in Seoul

S.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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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1569년에 제작된 <서울 백련사 범종>은 현존하는 16세기 범종의 첫 번째 작례이다. 현재 16세기 범종은 국내와 국외를 통틀어 모두 8점의 적은 수량만이 알려져 있다. 이 범종은 15세기 집중 적으로 제작되는 왕실의 후원 범종과 달리 승속의 수많은 인원이 시주자로 참여하여 재정을 지원 한 16세기 민간 후원의 범종이다. 특히, 이 범종에 1569년과 1907년으로 기재된 층위가 서로 다 른 두 개의 주종 기록은 <서울 백련사 범종>에 관한 원래 봉안 사찰을 추론하고, 현재 이안 사찰 의 소장 내력을 증명하는 자료로 중요하다. 1569년 점각 형태로 기재된 주종 기록에 등장하는 시주자 인명과 16세기 전국적으로 진행된 불서 간행에 참여한 시주자 인명을 비교·분석하여 <서울 백련사 범종>에 대한 원래 봉안 사찰을 황해도 서흥군 歸眞寺로 추정하였다. 귀진사는 16세기 중반에 불교미술의 최대 후원자인 文定王 后(1501-1565)와 高僧 虛應普愚(1509-1565)의 보호를 받으며 경제적 지원을 받았던 지방의 왕실 후원 사찰로 고가의 재료인 금속이 필요했던 범종 불사를 진행하기에 적합하였다. 1907년 선각 형태로 기재된 주종 기록은 <서울 백련사 범종>을 잃어버린 후 다시 찾아왔던 당시에 백련사 주지 金西翁이 의도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1907년 10월 15일부터 16일까지 이틀간 발행된 『경성일보』에는 이 범종에 관한 도난과 회수의 전 과정이 상세히 소개되었다. 이 신문 기사 는 이 범종이 늦어도 1907년에는 서울시 서대문구 백련사에 봉안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한편, 이 범종은 도성과 도성 인근에 왕실 후원 사찰들이 19세기 중반부터 말까지 지방에 소재한 범종 을 옮겨오는 사례와 같이 백련사로 이안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서울 백련사 범종>은 한국 범종의 전통적 조형성과 양식을 유지하며 중국 범종의 외래 요소 를 일부분 반영한 작품이다. 단용의 종뉴, 입상연판문대, 범자문, 연곽, 보상화문의 표현은 고려시 대부터 조선 전기 15세기까지 제작된 전통형 범종을 계승한 것이며, 이 범종 이후 16세기 후반에 제작되는 범종들이 한국 범종의 전통 양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영향을 주었다. 반면에 종뉴의 전 체 모양은 구름 위를 날아다니는 운룡문의 도상을 평면에서 입체적으로 변형하여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운룡문 도상은 중국에서 기원하여 성립된 것으로 동아시아에서는 15-16세기에 보 편적으로 유행했던 장엄 요소였음을 확인하였다.

Dongak Art HistoryVol.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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