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ges in Political Forces during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Shanghai Syngman Rhee (1919-1925)-Focusing on “畿湖派” and “西北派”
본 연구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이승만 시기(1919~1925)동안, 가장 주요한 정치세력으로 언급된 ‘기호파’와 ‘서북파’에 대한 구분을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리고 본 연구를 통하여 살펴본 결과,이승만의 경우에는 1919년 대통령을 역임하기 이전까지는 재외한인동포들 사이에서 활동한 이력이 각인되어 연고적으로 ‘畿湖’지역 사람들과 이해를 같이하면서 세력이 형성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안창호 역시 ‘105인 사건’을거치면서 활동한 실력양성운동과 ‘흥사단’이라는 단체를 통하여 ‘西北’지역의 연고를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이승만보다 임시정부 내에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지지세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안창호는, 1919년 이승만이구미위원부를 개설하여 임시정부의 국채발행을 통한 재정확보 전략을 진행하면서 갈등이표면화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역별 연고’를 중심으로 이승만과 안창호의 세력이 형성되는 것은1919년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직전까지였다. 이 때까지 안창호와 이승만은 상해에있지 않았으며, 안창호는 1919년 5월 25일 이승만은 1920년 12월이 되어서야 상해에 도착하였다. 특히 1920년 12월 이승만이 상해에 도착한 직후부터, 기존에 ‘지역별 연고’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였던 ‘기호파’와 ‘서북파’는 본격적으로 정치적 이해관계가 상충하며 ‘정체세력’으로 성격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세력변화는 1922년 워싱턴 회의의 결렬과 1923년 국민대표회의 개최와결렬을 통하여, ‘기호파(정부옹호파)’ 대 ‘개조파’ 대로 재편되었고, 1924년 민정식을 둘러싼 자금융통의 문제 때문에 이승만을 지지하던 이동녕 내각이 붕괴되면서, 1924년 12월박은식 내각이 등장하여 ‘이승만 대통령 탄핵’사안이 임시정부에서 통과되면서 일단락 되었다.
Authors
- SeungWon. Lee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Historical Association for Soong-Sil
- Published
- 2025-06-30
- DOI
- https://doi.org/10.16942/ssh.2025.54.06.09
- Primary Topic
- Vietnamese History and Culture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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