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the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of the Joseonminjokdaedongdan(1919-1922)
조선민족대동단(약칭 대동단)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결성된 항일 비밀결사이다. 결성 직후 총재 김가진, 단장 전협을 중심으로 단원포섭 및 선전활동에 주력하였으며, 향후확대를 염두한 정부형태의 대규모 조직구성을 표방하였다. 대동단의 활동에 참여한 것으로확인되는 152명을 분석한 결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지역·성별·종교·학력 등에서 다양성을갖춘 대중적 독립운동단체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전물 적발로 주요 단원들이 체포되자 대동단은 대한민국임시정부(약칭 상해임정)가위치한 상해로의 총부 이전을 위해 총재 김가진의 망명을 추진하였으며, 여기에는 상해임정의 연통제가 가동되었다. 이어 의친왕의 망명도 추진되었는데 이러한 황실 망명 시도는1908년부터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지속적으로 시도된 것이었다. 고종과 의친왕으로 대표되는 황실세력이 해외의 독립운동가들과 협력하여 일제 침략의 난국 타개와 국권회복의 지향을 갖고 추진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대동단과 상해임정이 협력한 의친왕 망명 시도가 실패하며 대동단원 다수가 체포되었는데, 일제는 이를 ‘대동단 사건’으로 명명하여 사태의 파장을 축소하고자 했다. 제2독립만세시위는 최초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공동 기획되었으나, ‘대동단 사건’으로 인한대동단 국내 조직 와해와 「선언서」 내 민족대표 인선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 개별 추진되었다. 모두 3·1운동을 계승한 평화적인 시위를 준비하였으나 상해임정의 시위는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졌고, 대동단의 시위는 한 차례 실패한 뒤 안국동에서 기습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때 체포된 대동단원들의 신문조서에는 독립에 대한 의지와 열망이 기록되었다. 대동단은 1920년 초 나창헌의 상해 망명 직후 총부이전을 공식화한 뒤 상해임정과 더불어 혈전을 준비하고 군자금 모집 및 선전활동에 나섰다. 같은 해 중순에는 젊은 대동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철혈단으로 개편, 상해임정을 견제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밀정 황학선사건으로 나창헌 등이 탈퇴한 후에는 정구단으로 개편하여 상해임정을 비판하는 선전활동을 이어갔다. 총재 김가진은 상해의 최고령 독립운동가로, 박은식과 함께 ‘國老’로 역할하다 1922년 7 월 서거하였다. 장례는 상해임정 요인들의 주관 아래 상해 한인 270여 명이 참석하였으며, 국내에서도 호상소가 마련되어 晩節을 지킨 그의 서거를 추모했다.
Authors
- Woo-Hee Bae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Historical Association for Soong-Sil
- Published
- 2025-06-30
- DOI
- https://doi.org/10.16942/ssh.2025.54.06.08
- Primary Topic
- Asian Culture and Media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