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struction Date and Characteristics of Ogeumsanseong (old, Iksan Earthen Fortress) as Revealed from Written Materials

본 논고에서는 익산 오금산성에서 출토된 문자자료를 분석하고 그 조성연대와 성격을 살펴보았다.<br/> 오금산성은 오금산 정상부와 그 남쪽의 계곡을 에워싸고 축조된 석축성(石築城)이다. 그러나 북쪽 성벽에서 석축 성벽 이전의 목책열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석축 이전의 방어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남쪽 평탄지에서는 백제 시기 석축의 집수시설이 발견되었고 그 내부에서는 ‘칠피갑옷’ 및 ‘봉축’ 편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br/> 오금산성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北舍」 명 토기편, 「首府」 명, 「五部」 명 인장와 등의 문자자료가 출토되었다. 해당 유물은 현재까지 부여와 익산지역에 한정되며 왕실과 연관된 국가시설물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특히, 익산지역의 오부명으로 추정되는 「上 -中 -下 -前 -後 」 명 인장와의 「水」는 익산의 백제시기 지명인 ‘금마저(金馬渚)’의 ‘渚’의 ‘氵’변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문서표지용 목간의 한 유형인 ‘봉축’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출토되었다. 봉축의 한쪽 면에는 ‘丁巳 今在食(정사년 지금 남아있는 식량)’ 이 서사되어 있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봉축은 국가의 공식적인 문서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오금산성 내에서 문서행정이 이루어졌거나 혹 이를 보관하던 건물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br/> 오금산성의 사용 시기는 익산지역의 백제유적과 같은 시기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봉축 편의 ‘정사(丁巳)’ 기년의 연대는 의자왕 17년인 657년으로 판단된다.<br/> 한편, 오금산성은 왕궁과 미륵사의 중간지점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아 왕궁리유적과 오금산성은 ‘왕궁과 피난성’의 관계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오금산성은 왕궁의 피난성으로 볼 수 있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Wooden Documents and Inscriptions Studies
Published
2025-06-30
DOI
https://doi.org/10.35302/wdis.2025.06.34.27
Primary Topic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Type
article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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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nstruction Date and Characteristics of Ogeumsanseong (old, Iksan Earthen Fortress) as Revealed from Written Materials

Moon Hyoung Lee
Wooden Documents and Inscriptions Studies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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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nstruction Date and Characteristics of Ogeumsanseong (old, Iksan Earthen Fortress) as Revealed from Written Materials

Moon Hyo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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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본 논고에서는 익산 오금산성에서 출토된 문자자료를 분석하고 그 조성연대와 성격을 살펴보았다.<br/> 오금산성은 오금산 정상부와 그 남쪽의 계곡을 에워싸고 축조된 석축성(石築城)이다. 그러나 북쪽 성벽에서 석축 성벽 이전의 목책열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석축 이전의 방어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남쪽 평탄지에서는 백제 시기 석축의 집수시설이 발견되었고 그 내부에서는 ‘칠피갑옷’ 및 ‘봉축’ 편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br/> 오금산성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北舍」 명 토기편, 「首府」 명, 「五部」 명 인장와 등의 문자자료가 출토되었다. 해당 유물은 현재까지 부여와 익산지역에 한정되며 왕실과 연관된 국가시설물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특히, 익산지역의 오부명으로 추정되는 「上 -中 -下 -前 -後 」 명 인장와의 「水」는 익산의 백제시기 지명인 ‘금마저(金馬渚)’의 ‘渚’의 ‘氵’변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문서표지용 목간의 한 유형인 ‘봉축’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출토되었다. 봉축의 한쪽 면에는 ‘丁巳 今在食(정사년 지금 남아있는 식량)’ 이 서사되어 있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봉축은 국가의 공식적인 문서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오금산성 내에서 문서행정이 이루어졌거나 혹 이를 보관하던 건물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br/> 오금산성의 사용 시기는 익산지역의 백제유적과 같은 시기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봉축 편의 ‘정사(丁巳)’ 기년의 연대는 의자왕 17년인 657년으로 판단된다.<br/> 한편, 오금산성은 왕궁과 미륵사의 중간지점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아 왕궁리유적과 오금산성은 ‘왕궁과 피난성’의 관계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오금산성은 왕궁의 피난성으로 볼 수 있다.

Wooden Documents and Inscriptions StudiesVol.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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