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mparative Study on Smallpox Prevention and Control Measures in Korea and China During the 17th-19th Centuries - Focus on the Royal Families of the Joseon and Qing Dynasties -
17세기와 19세기는 ‘전염병(역병)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전 세계적으로 역병이 대규모 유행했던 시기였다.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두창1)이 강한 역병으로 대표적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5∼6년을 주기로 한 번씩 두창이 창궐하였는데 비슷한 시기 의 청나라도 피해를 면하지 못하였다. 현재 한중 학계에서 조선 왕실의 두창 방제 조치에 대한 평가는 아직 명확히 정 립되지 않은 상태이다. 본 논문은 동아시아적 비교 시각을 도입하여, 동시대에 유 사한 위협에 직면했던 청나라 황실의 사례와 비교 분석함으로써 조선 왕실의 두창 방제 조치를 보다 체계적․객관적으로 재조명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나라의 핵심 적 통치 기구’의 구성원으로서 두창 방제 책임 이행 상황을 고찰하고, 나아가 양측 의 경험과 교훈도 종합적으로 도출하였다. 더불어 조선 왕실과 청 황실의 두창 방 제 조치가 다음과 같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첫째, 진상을 알 수 없는 공포의 질병은 인간의 본능적인 ‘피신’에서 비롯되었고 조선 왕실의 ‘피접’(避接)과 청 황실의 ‘피두’(避痘)의 행위가 나타났다. 둘째, 양측 은 모두 약물 예방과 치료법을 중시했지만, 서양 학문에 대한 거부적 태도로 인해 우두(牛痘)법이 도입된 초기 단계에서 왕실이 재빠르게 효과적으로 시행하지 못하 였다. 셋째, 약물 예방과 치료의 효과가 미미했기 때문에, 양측은 모두 두신(痘神) 에게 제사를 지내는 행위를 보였다. 이처럼 공통점을 갖고 있는 동시에 세 가지 면에서의 차이점도 존재하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첫째, 현재까지 조선 왕실이 대규모로 두창 환자를 추방한 사료는 확인되지 않지만, 청나라 황실은 백성들에게 ‘추두’(驅痘 두창 환자를 도성에서 몰 아냄) 정책을 여러 차례 시행한 기록이 남아 있다. 둘째, 약물 예방 및 치료 측면에 서 진료 대상의 특수성으로 인해 조선의 내의원과 청의 태의원은 모두 약물 사용 에 있어 보수적인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태의원과 비교할 때 내의원은 왕실의 두 창 치료에 있어 인신의 원기(元氣)를 더욱 중시하였으며, 온보(溫補) 할 약을 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태의원보다 더욱 신중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셋째, 당시 사회 적 분위기 속에서 왕족들이 궁궐에서 무당을 불러들여 ‘두신제(痘神祭)’를 거행하 는 것을 용납하지 않은 반면에 청 황실은 그리 회피하지 않았다. 한중 양국이 이러한 차이를 보인 이유는 유교가 조선에서 절대적인 국가 통치 이념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 왕실은 의략(議藥) 정책을 통해 여러 의견을 수렴해 치료 방 안을 마련했고, 때로는 절충적 치료 방안을 취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조선은 왕권 과 신권의 권력 관계에 따라 정책 방향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한중 양국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Authors
- Zijie Li
- Meng Wang (ORCID: https://orcid.org/0000-0003-3832-0563)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East Asian Ancient Studies
- Published
- 2025-06-30
- DOI
- https://doi.org/10.17070/aeaas.2025.6.78.257
- Primary Topic
- Psychosocial Factors Impacting Youth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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