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nsidering the Location of Chungju-seong During the Goryeo-Mongol Wars
본고는 충주지역의 고려성곽과 여몽전쟁과 관련한 ‘忠州城’에 대한 명칭과 위치 비정을 하고자 하였다. 문헌에서 충주성은 여몽전쟁기 몽골군과의 1차 전쟁과 5차 전쟁을 승전했던 곳 이면서, 1256년 6차 전쟁 당시 몽골군에게 도륙을 당했던 곳이다. 고려시대 충주성 에 대한 실체는 최근 고고학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성곽은 토성이며, 둘레 8km 정 도의 규모이다. 하지만 당시의 기록이 빈약하여 충주성이 여몽전쟁기 5차 전쟁인 1253년 10월 당시 김윤후가 승전을 했던 곳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고고학 조사로 밝혀진 충주 중심지 주변으로 고려시대에 활용된 대림산성과 계 족산성이 위치한다. 1255년 이후 몽골군이 출병 양상은 충주 외곽의 대원령으로 향하고 있다. 당시 전황으로 보아 1253년에서 1255년 사이에는 대림산성과 계족산 성이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256년 4월 경에 충주성이 도륙당하고, 이 들 산성이 몽골군에서 함락이 될 처지에 되자 충주민은 산악지대인 월악산성으로 입보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전황을 검토해 보면, 여몽전쟁기 충주성과 대림산성, 계족산성은 鼎足地勢의 충주 방어선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여몽전쟁기 충주성은 토성이면서 조선시대 충주읍성 외곽을 이룬다. 그리고 중요 관청이 현재 관아공원 일대에 집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자는 여몽전쟁기 충주성은 고고학으로 밝혀진 “고려시대 충주토성”으로 판단하며, 조선시대 충주읍성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Authors
- Ho-jun Kim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East Asian Ancient Studies
- Published
- 2025-06-30
- DOI
- https://doi.org/10.17070/aeaas.2025.6.78.147
- Primary Topic
- Eurasian Exchange Network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