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mpilation and Political Significance of Eojeong hongikjeonggongjugo during the King Jeongjo∼Sunjo Era
정조는 외조부 홍봉한의 『御定洪翼靖公奏藁』(이하 『奏藁』로 약칭)를 편찬하고자, 홍봉한의 추숭을 선행하였다. 홍봉한은 혜경궁의 부친으로, 혜경궁이 세자빈으로 간택된 이후 영조의 치세에 두루 관직을 역임한 인물이다. 특히 영조에 의해서 ‘建極主人’으로 인정된 후 국왕의 탕평정치를 돕는 ‘蕩平官僚’로 활동하였다. 특히 영조 대 후반에 국가적으로 각종 제도 정비에 있어서 홍봉한의 역할은 상당하였다. 다만, 임오화변과 관련하여 홍봉한을 향한 논란은 지속되었고, 정조는 홍봉한을 향한 보호론적 입장에서 홍봉한의 혐의를 벗기고자 노력하였다.1791년(정조 15)부터 10년간 정조는 홍봉한의 『奏藁』 편찬을 준비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1798년(정조 22)부터 3년간 풍산홍씨 가문 인물들과 御札을 주고받으며 『奏藁』 편찬을 진행하였다. 정조가 보낸 御札에서 정조가 洪樂任ㆍ洪就榮ㆍ洪龍漢 등 외가 인물들과 『奏藁』 편집 과정을 논의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정조는 『奏藁』 편찬에 있어서 구성은 물론이고, 글자 하나까지 籤紙를 붙여가며 상세하게 교열을 지시하였다. 나아가 혜경궁에게 보여주고자, 『주고』의 諺文 제작을 지시하는 등 외가에 ‘慈宮本家’의 위상을 정립하였다.정조는 자신을 朱子에 비유하고, 외조부 홍봉한을 주자의 외조부 祝確에 비유함으로써 『奏藁』 편찬을 상징화하였다. 나아가 정조는 홍봉한의 저작을 『奏藁』ㆍ『遺集』ㆍ『年譜』의 세 형태로 편찬을 기획하며, 각각 편찬 형태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奏藁』는 6개의 類로 편제되었으며, 總序에는 각각의 명칭에 담고자 했던 의도를 명시하고 있다. 『奏藁』에 수록된 1605개 조항은 1761년(영조 37)∼1765년(영조 41)에 집중되고 있다. 이를 통해 『奏藁』에서 제시하는 각종 정책이 영조 대 후반에 추진되거나 시행되었던 정책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나아가 『奏藁』에 수록된 節目 및 定式의 편집 방식을 통해서 정조가 정책의 始末을 보여주고, 국가 운영의 지침서를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정조는 『奏藁』에 홍봉한이 영조 대 후반에 제안하거나 시행했던 각종 정책의 내용을 수록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외조부 홍봉한의 경세가적 측면을 부각하였다. 나아가 『奏藁』 편찬 과정에서 특정사안과 관련해서 홍봉한의 발언이 아닌 내용도 수록하였다. 이는 영조대 후반 정책을 계승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긴 ‘繼志述事’를 보여주면서, 정조 자신이 추진했던 정책의 성과를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奏藁』는 영조대 후반부터 순조대 전반까지 국정 운영 방향성의 일면을 고찰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
Authors
- Hyeon-seon Kim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CHOSON DYNASTY HISTORY ASSOCIATION
- Published
- 2025-06-30
- DOI
- https://doi.org/10.21568/cdha.2025.03.113.359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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