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duction and Distribution of Paper in Ancient Korea: Focusing on Silla
고대 한국에서 처음 종이를 제작한 것은 기원후 2세기말 한의 군현 지배 과정에서 서북한의 낙랑군에 제지소가 설치되고 제지술이 전해지면서부터로 추정된다. 그러나 낙랑군에 전해진 제지술은 곧바로 한국 고대국가에 전해지지는 못하였다.<br/> 그 후 가장 먼저 제지기술을 수용한 것은 고구려였다. 고구려는 낙랑군과 빈번하게 접촉・교류하는 과정에서 종이와 제지기술이 수용되어 국서나 유교・불교 경전 간행 등에 필요한 종이를 제작하였다. 불교 수용과 국사 편찬에 따른 경전과 서책 간행, 3안악 3호분과 퉁구사신촌 고분벽화의 종이 문서 그림 등을 통해 늦어도 4세기 중후엽에는 자체 제작한 종이로 경전과 공문서 등에 사용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청암리토성과 대성산성 사찰에서 출토된 종이 유물(불경)으로 보아 주로 마지가 제작된 것으로 파악된다.<br/>백제 역시 낙랑군 또는 중국 남조 국가와의 교류를 통해 제지기술이 수용되어 4세기 후반 이후 각종 공문서나 국서・유교・불교 경전 등 대량의 종이 수요를 충당하였다. 또 화엄사 화엄경 발문에 기록된 구 백제지역 출신 紙作人의 활동을 통해 늦어도 6~7세기에는 고급의 저지도 제작한 것으로 파악된다.<br/> 신라는 가장 늦게 제지술을 수용하였지만, 국서와 불경, 유교 경전이 대규모로 간행되는 6세기 중엽 경부터는 제지 수공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월성해자 2호 종이 목간과 최고급 저지로 제작된 각종 공문서와 불경들이 이를 대변해 준다. 이와 더불어 신라에서는 상기 종이 목간과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등 종이 제작과 유통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과 종이 유물들이 다수 남아 있어 종이의 특징(지질, 규격 등)과 종이 제작 장인의 품계, 종이의 제작·유통과정을 파악해 볼 수 있다. 종이 제작은 닥나무를 수확하기 직전인 음력 9~10월부터 시작하여 이듬해 2월까지 겨울 동안 이루어졌으며, 종이가 귀하고 비싼 만큼, 紙作人 역시 우대받아 11위에 해당하는 5품의 고위 관직에 제수되었다. 저지뿐만 아니라 마지도 계속 생산되었으며, 다양한 색깔과 등급으로 시장의 楮廛을 통해 유통되었다. 또 불경 등 최고급의 종이가 다량 필요한 경우 해당 사찰 인근의 제지공방 장인을 참여시켜 필요한 종이를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종이는 가로30×세로60㎝의 전지로 제작되어 판매되어, 필요한 크기로 재단하여 사용하였다. 긴 두루마리 형태의 불경은 이 규격의 종이를 가로로 여러 장 이어 붙여 제작하거나 필요한 등분으로 재단하여 사용하였다.
Authors
- G Kim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JOURNAL OF KOREAN CULTRUAL HISTORY
- Published
- 2025-06-30
- DOI
- https://doi.org/10.29334/mhsh.2025.06.63.30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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