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ical Investigation of Naechwi and Gochwi Attire in the Joseon Dynasty
이 연구는 조선시대 대가노부(大駕鹵簿)를 중심으로 내취(內吹) 및 고취(鼓吹) 제도와 복식의 고증을 통해 국가 의전용 전통 국악대 복식의 고품격화와 다양화 방안을 모색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첫째, 조선시대의 내취는 국왕의 시위 군악대로서 취각(吹螺)을 담당했다. 15세기 『국조오례의서례』에서는 내취의 인원을 6인으로 규정하였으나, 18세기 『국조속오례의서례』에서는 23인으로 증원되었고 내취가 사용하는 악기의 종류도 증가하였다. 또한 선전관청 소속 원내취(황내취)의 증원 외에 군영 소속 겸내취(흑내취)제도도 신설하여 내취를 확대함으로써 국왕의 위상을 드높이고자 하였다. 둘째, 『국조오례의서례』에는 내취의 복식을 기복(器服)으로만 언급하였으나, 1650년 『[효종]국장도감의궤』 반차도에서는 내취가 황색 관모와 황색 옷을 착용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759년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 반차도에서 황색 관모가 초립(草笠)으로 확인되었고, 1778년 <정아조회지도(正衙朝會之圖)>의 ‘황융복(黃戎服)’ 기록을 통해 황색옷이 황철릭임을 알 수 있었다. 내취의 초립에는 의례의 성격에 따라 공작우, 호수, 수화 등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1786년 『일성록』에는 내취의 ‘황철릭[黃天翼]’ 외에 청철릭[靑天翼]이 기록되어 있는데 청철릭은 칙사가 올 때 착용하는 옷이었으나, 1784년 이후 정조의 전교로 인해 황철릭으로 통일되었다. 1895년에는 내취가 군악대로 개칭되면서 복장도 황색 착수의(窄袖衣)와 황색 괘자 또는 전복 등으로 간소화되었다. 셋째, 일제강점기 동안 군악대의 명맥을 유지해 온 결과, 1971년 ‘대취타’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고, 1998년에는 ‘피리정악 및 대취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재 복식은 초립 대신 황색 비단을 바른 황립(黃笠)에 흰 깃털 장식을 하고 황철릭에 남전대(藍戰帶)를 착용하는데, 남전대는 뒤로 묶는 방식으로 변형되었다. 넷째, 어가 앞뒤를 따르면서 연주하는 고취는 전부고취(前部鼓吹), 후부고취(後部鼓吹)가 있었다. 조선 전기에는 각각 악사 1명과 악공 50명으로 구성되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인 1643년에 전악 1명과 악공 40명으로 축소되었다. 다섯째, 조선 전기에 악사는 복두(幞頭)에 공복형 녹초삼(綠綃衫), 오정대(烏鞓帶), 흑피화(黑皮靴)를 착용하고, 악공은 전후와 양각에 채화를 그린 복두를 쓰고 모란 무늬의 녹색 소화흉배(小花胸背)를 장식한 홍주삼(紅紬衫)과 오정대를 둘렀다. 이러한 형태는 1604년 『[선조]재존호도감의궤』 반차도를 통해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섯째, 조선 후기에는 전악(악사)의 녹초삼과 악공의 홍주삼이 백관용 상복(常服) 및 시복(時服) 형태로 변했다. 현재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집박(전악)과 연주자들은 조선 후기 전악과 악공의 복식에 흉배 장식을 추가하였으며, 집박과 연주자 모두 집박 복두로 통일하여 사용하고 있다. 고증 결과를 반영하여 조선 후기 고취 복식의 원형에 충실한 복식을 도입한다면, 고취 복식의 본래 형태와 의의를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Authors
- Sujin Kim (ORCID: https://orcid.org/0000-0002-4251-6318)
- Eun-Joo Lee (ORCID: https://orcid.org/0000-0002-4294-9471)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Journal of Korean Dress
- Published
- 2024-11-30
- DOI
- https://doi.org/10.47597/kds.52.1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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