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igins of the Skirts Preserved at Myohoin Temple, Kyoto, Japan
본 논문은 일본 교토 묘법원에 소장된 치마의 출처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묘법원에는 풍신수길(豐臣秀吉,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품이 소장되어 있는데, 1832년 일본 승려 진정(眞淨)은 이 유품을 목판에 새겨 『풍공유보도략(豊公遺寶圖略)』이라는 책을 남겼다. 그 하권에는 1590년 조선 선조가 보낸 국서와 예물 목록, 그리고 ‘조선인의(朝鮮人衣)’라는 복식 도식이 포함되어 있다. 1994년 이 책이 국내에 소개된 이래, ‘조선인의’ 도식은 임진왜란 이전 조선 중기 복식을 알 수 있는 자료로 연구되어왔다. 그러나 1998년 일본 교토국립박물관에서 『학총(學叢)』을 통해 공개한 묘법원 소장 복식 실물은 조선시대 복식과 확연히 달라 그 출처에 의문을 갖게 한다. 특히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것은 2점의 치마로, 중앙을 제외한 좌우에 주름이 잡힌 치마는 조선시대 유물에서는 보이지 않는 형태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본 연구에서는 묘법원 소장 치마가 가진 특징의 유래를 살펴보고, 출토유물과 비교, 분석하여 그 출처를 파악해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확인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첫째, 묘법원 소장 치마는 중앙을 제외한 좌우에만 주름이 잡혀있는데, 이는 명대 출토유물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이런 형태의 치마는 모두 두 자락으로 이루어져 앞뒤가 트여있는데, 이는 송대 치마에 기원을 둔 것으로 분석되었다. 둘째, 묘법원 소장 치마에 나타난 선 장식은 명대 복식 제도에서 ‘횡란(橫襴)’이라 불린다. 원래 난(襴)은 북주 이래 당ㆍ송대 사인(士人)의 삼(衫)이나 관복에 별도로 꿰맨 횡폭을 의미하였으나, 금대부터 무늬를 직금(織金)해 선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명대에는 치마의 선 장식으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셋째, 묘법원 소장 치마와 명대 출토 치마의 무늬를 비교, 분석한 결과, 만자문, 회자문, 여의문, 봉황과 난새, 기린문, 영락문 등이 서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넷째, 조선시대 출토유물에서는 두 자락 치마가 보고된 사례가 아직 없으며, 16세기에서 17세기 전반까지 연화동자문이나 포도동자문이 스란 무늬의 주를 이루는 것을 선행연구를 통해 파악하였다.문헌, 회화, 출토유물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묘법원 소장 치마는 조선왕실에서 제작한 복식이 아닌, 명에서 제작한 복식으로 추정된다. 특히, 1595년 명 신종이 풍신수길을 일본국왕으로 책봉하며 사여한 관복(冠服) 목록과 묘법원 소장 복식 및 『풍공유보도략』 ‘조선인의’ 도식이 상당 부분 일치하는 점을 볼 때, 이 치마 또한 명나라 관복 하사품의 일부로 판단된다.
Authors
- Jiwon Kim (ORCID: https://orcid.org/0000-0002-5027-3061)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Journal of Korean Dress
- Published
- 2025-05-31
- DOI
- https://doi.org/10.47597/kds.53.1
- Primary Topic
- Japanese History and Culture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