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 Gongmin Belief in Andong Naesalmi Village in View of the Historical Lamination and Transition Process - Focusing on the King Gongmin Family Belief System at ‘Wangmodang’ -

역사적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민간신앙 전승사를 연구할 때, 주민들이 전승하는 신앙, 신앙의 근거가 되는 전설, 신앙과 관련된 인물 등에 대해 오랜 기간 축적된 역사적 사실과 어떤 관계인지 해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간전승의 중요한 장르인 전설은 뭔가 근거가 있지만, 전설의 텍스트 그대로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전설이 역사적 사실을 상징적으로 반영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상징이 형성되고, 전이되고, 착종되어 온 과정이 민속학적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br/> 안동시 도산면 내살미마을의 공민왕계(恭愍王系) 신앙은 진성 이씨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성 이씨 안동 입향조 이자수(李子脩)는, 공민왕이 안동에 피난을 와 있을 때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전공을 세워 송안군(松安君)이 되고 안사공신(安社功臣)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민왕은 안동에 피난을 와서 안동사람들로부터 대우를 받았고, 홍건적을 물리칠 수 있었기에 안동부에 많은 혜택을 주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공민왕은 제2비 혜비의 외척인 안동사람이 포함된 무리에 의해서 시해되었다. 조선초기까지 공민왕은 고려의 훌륭한 왕으로 인정되어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주었으니, 안동 사람들에게도 신원(伸寃; 解寃)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다가 조선 영조 때 고려 충신에 대한 현양사업이 이루어지고, 청량산은 퇴계종가에 하사되었다.<br/>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생각해보면, 영조 이전 청량산록에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점과 영조 이후 큰 마을로 확대된 이후를 구분해야 동제의 성격 변화를 판단할 수 있겠다. 내살미마을에서 본래 ‘할배’(할아버지)와 ‘할매’(할머니)를 서낭신으로 모시던 서낭당이, 마을주변의 왕모산성이라는 산성 이름에 근거하여 점차 공민왕 어머니와 공민왕(혹은 공민왕 아버지)을 모시는 왕모당(王母堂)으로 전환된 것이다. 왕모산성에 대해서 내살미마을의 진성 이씨들은 자신들의 안동 입향조와 공민왕의 연관성에 근거하여 공민왕 어머니의 피신지로 인식하였을 것이 다. 이 마을의 봉화 금씨들도 왕모산성의 왕모(왕의 어머니)를 안동에 혜택을 내린 공민왕 가계의 여성으로 인식하고 신원대상으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왕모당이라고 명명하면서도 왕모에 해당하는 ‘할매’신보다 공민왕에 해당하는 ‘할배’신을 먼저 거론한다는 사실을 보면, 원래의 신격이 왕모산성의 존재에 근거하여 의미소가 부화되고 전이되었음을 뜻한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The Study of Practice Folkloristics
Published
2025-02-28
DOI
https://doi.org/10.35303/spf.2025.02.45.201
Primary Topic
Korean Urban and Social Studies
Type
article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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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g Gongmin Belief in Andong Naesalmi Village in View of the Historical Lamination and Transition Process - Focusing on the King Gongmin Family Belief System at ‘Wangmodang’ -

Young-Dong Bae
The Study of Practice Folkloristics
Korean Urban and Social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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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g Gongmin Belief in Andong Naesalmi Village in View of the Historical Lamination and Transition Process - Focusing on the King Gongmin Family Belief System at ‘Wangmodang’ -

Young-Dong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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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역사적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민간신앙 전승사를 연구할 때, 주민들이 전승하는 신앙, 신앙의 근거가 되는 전설, 신앙과 관련된 인물 등에 대해 오랜 기간 축적된 역사적 사실과 어떤 관계인지 해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간전승의 중요한 장르인 전설은 뭔가 근거가 있지만, 전설의 텍스트 그대로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전설이 역사적 사실을 상징적으로 반영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상징이 형성되고, 전이되고, 착종되어 온 과정이 민속학적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br/> 안동시 도산면 내살미마을의 공민왕계(恭愍王系) 신앙은 진성 이씨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성 이씨 안동 입향조 이자수(李子脩)는, 공민왕이 안동에 피난을 와 있을 때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전공을 세워 송안군(松安君)이 되고 안사공신(安社功臣)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민왕은 안동에 피난을 와서 안동사람들로부터 대우를 받았고, 홍건적을 물리칠 수 있었기에 안동부에 많은 혜택을 주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공민왕은 제2비 혜비의 외척인 안동사람이 포함된 무리에 의해서 시해되었다. 조선초기까지 공민왕은 고려의 훌륭한 왕으로 인정되어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주었으니, 안동 사람들에게도 신원(伸寃; 解寃)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다가 조선 영조 때 고려 충신에 대한 현양사업이 이루어지고, 청량산은 퇴계종가에 하사되었다.<br/>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생각해보면, 영조 이전 청량산록에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점과 영조 이후 큰 마을로 확대된 이후를 구분해야 동제의 성격 변화를 판단할 수 있겠다. 내살미마을에서 본래 ‘할배’(할아버지)와 ‘할매’(할머니)를 서낭신으로 모시던 서낭당이, 마을주변의 왕모산성이라는 산성 이름에 근거하여 점차 공민왕 어머니와 공민왕(혹은 공민왕 아버지)을 모시는 왕모당(王母堂)으로 전환된 것이다. 왕모산성에 대해서 내살미마을의 진성 이씨들은 자신들의 안동 입향조와 공민왕의 연관성에 근거하여 공민왕 어머니의 피신지로 인식하였을 것이 다. 이 마을의 봉화 금씨들도 왕모산성의 왕모(왕의 어머니)를 안동에 혜택을 내린 공민왕 가계의 여성으로 인식하고 신원대상으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왕모당이라고 명명하면서도 왕모에 해당하는 ‘할매’신보다 공민왕에 해당하는 ‘할배’신을 먼저 거론한다는 사실을 보면, 원래의 신격이 왕모산성의 존재에 근거하여 의미소가 부화되고 전이되었음을 뜻한다.

The Study of Practice FolkloristicsVol.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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