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i Gyun(최균), the Founder of the Sado Gongpa Lineage of the Jeonju Choi Clan, and Goryeo Metal Movable Type
이 글은 최균(崔均)의 일생과 고려 금속활자와의 관계를 살펴보는데 목적을 두었다. 최균은 전주 최씨 4파 중 사도공파의 시조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 그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1122년경 출생으로 추정되는 최균은 10대에 박춘령의 배려로 최척경·최송년과 함께 개성에서 과거 준비를 하였다. 그의 어린 시절은 이자겸의 난, 금나라의 북송 점령, 묘청의 거병 등 격변의 시대였다. 1144년 병과에 급제하여 소부주부로 관료 생활을 시작하였고, 주로 개경에서 관료로 활동하였다.<br/> 최균이 정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점은 1155년 최윤의(崔允儀 1102~1162)가 주도한 『상정고금예』 제작 실무를 맡기면서부터이다. 최균은 『상정고금예』제작에 큰 공을 세워 의종으로부터 신임을 받았고, 명종의 그에 대한 신뢰는 두터웠다. 그는 양위문제로 온 금나라 사신을 응대하는 접반사로 임명되어, 금나라의 의심을 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br/> 정중부가 주도한 무신정권의 성립 과정에서 많은 문신들이 학살당했지만, 최균은 살아남았다. 병마부사에 임명되어 조위총의 거병을 진압하는 데 유응규(庾應圭)와 함께 큰 역할을 하였지만, 1174년에는 병마사 대장군과 함께 김박승(⾦朴升)과 조관(趙冠)에게 살해당하였다. 조선의 사관들은 그를 "글재주와 행정 능력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하였다.<br/> 특히 최균은 고려 금속활자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을 가능성에서 주목되는 인물이다. 고려 금속활자는 12세기 전반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234년의 『상정고금예』, 1239년의 『남명천화상송증도가』, 1377년의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등 문헌의 금속활자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에서 1155~1162년 사이에 간행된 『상정고금예』가 금속활자본일 가능성은 증명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균은 세계 인쇄 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Authors
- Woon-yong Shin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Korea-Japan Historical Review
- Published
- 2025-05-31
- DOI
- https://doi.org/10.18496/kjhr.2025.5.88.89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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