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f the Waegu Leader Sangmanho in the Year of 1396 Invasion
본 연구의 목적은 태조5(1396)년 12월 ‘왜구의 괴수 5명이 수백 명을 거느리고 영해 축산도에서 항복’했던 당시 왜구의 우두머리 상만호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다. 이것은 고려말-조선초 왜구의 구성 및 실체를 규명하는데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br/> 상만호는 투항한 이듬해 1월 울주지사 이은과 이예 등을 붙잡아 도주했다. 이때 붙잡혀 간 이예의 증언에 따르면 “홍무 병자(1396)년 12월에 비구로고(非舊⽼古) 등이 3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항복했으나 이은과 이예 등을 붙잡아 달아났고, 이은과 이예 등은 비구로고에 의해 죽음을 면하고 대마도 화전포(和田浦)에 유치됐다”고 한다. 즉 상만호는 비구로고이다. 비구로고란 히코로쿠(彦六)인데 이 이름은 대마도 소씨 적장자에게 계승되는 이름이다. 1396년에 활동한 히코로쿠는 소 사다시게(宗 貞茂)이다. 따라서 ‘상만호=비구로고=히코로쿠=소 사다시게’라는 결론에 이르렀다.<br/> 또한 이예가 유치된 화전포의 위치가『해동제국기』의 「대마도지도」에서 완다노포(니이의 입구)로 지목되어 왔으나, 화전포는 니이군이 아니고 요라군(与良郡) 오야마(大山) 가즈타노우라(和田ノ浦)였다. 중세 오야마 화전포는 소씨 종가와 연고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br/> 일본의 중세 대외관계사 연구자 무라이 쇼스케는 왜구의 실체가 일본인만이 아니라 한반도 및 중국의 도서 연해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해당한다는 소위 <왜구경계인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 설의 전제가 되는 것이 <왜구=비영주(非領主)·주민(住⺠)>설이다. 즉 왜구의 실체는 영주나 무사가 아닌 비영주·주민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1396년에 침구·항복했다가 도주한 왜구 우두머리 상만호=비구로고(히코로쿠)는 훗날 제7대 대마도주가 되는 소 사다시게이다. 따라서 무라이 쇼스케의 <왜구=비영주·주민>설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본 고찰은 조선 초 왜구의 두목으로서 그 직함이 사료에 명시되어 있는 ‘상만호’의 정체를 밝힘으로써, 고려말-조선초 왜구의 구성 및 그 왜구를 이끌고 영향력을 미친 세력의 정체를 규명하는 데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 준다.
Authors
- Hae-Ran Cho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Korea-Japan Historical Review
- Published
- 2025-05-31
- DOI
- https://doi.org/10.18496/kjhr.2025.5.88.3
- Primary Topic
- Asian Studies and History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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